류인석 수필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지나친 것은 아니함만 못하다’라는 의미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경험하는 사자성어다. 최근 충남도의회가 목청 높여 선도적으로 추진하겠다던 시·군 행정사무감사계획이 그 꼴이 됐다. 올해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기초자치단체 행정사무감사계획이 시·군의 저항에 못 이겨 무산됐다. 현실을 따르지 못하는 구시대적 발상이 시·군의 반대논리에 부딪혀 체면만 구긴 채, 충남도의회가 백기를 들고 만 셈이다. 차라리 시작을 안 했던 것만 못하게 됐다.

감사계획 자체를 부정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된다. 일선 시·군에 대해 도가 일정 사무를 위임하고, 해당 사무에 국·도비 예산을 배정했으면 법률적으로 당연히 도의회가 감사할 권한도 있고 책임도 있다. 시·군에 위임된 사무가 공정하게 시행되고 있는지, 또는 위임사무 추진을 위해 배정된 국·도비 예산은 적정하게 집행되고 있는지를 도의회가 감시·감독하는 것은 법률적 행위다. 다만 현실성을 외면한 채 실정법만 앞세운 도의원들의 권위의식이 빚은 일괄 순회감사제도는 지양돼야 할 구태다.

지방자치제도가 부활·시행된 지 올해로 26년이다. 약관(弱冠)의 나이를 지나 이젠 이립(而立)의 경지에 들었다. 도의원들의 사고(思考)도 이제 성숙할 단계다. 시·군에도 집행부를 감시·감독하는 기초의회가 있다. 또 공무원들의 의식 수준도 충분히 선악을 분별할 만큼 향상돼 있다. 도의원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는 감사는 지양돼야 한다. 지방자치도 이제 유치한 의식에서 벗어나 철들 나이가 됐다. 지방자치 부활 초기처럼 떼로 몰려다니며 위상과 권위를 과시하던 도의원들의 구태적 발상도 바뀌어야 한다. 시·군 행정사무감사 방식부터 현실성 있게 개선돼야 한다.

도의회에 상설 감사장을 만들어 놓고, 상설감사팀을 가동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말썽이 됐거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위임사무와 관련해 시·군의 관계 자료를 제출받아 실시하는 추심(推尋)감사 또는 선별감사 방식도 효과는 충분하다. 솔직히 도의원들 스스로 지방자치나 도정, 시· 군정에 대해 얼마만큼 전문지식과 감사능력을 갖추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충남도의회가 밝힌 대로 도가 일선 시·군에 위임한 사무는 모두 682건에 달하고, 도에서 지원하는 예산만도 국비 2조 3000억 원, 도비 5800억 원 등 무려 3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도가 위임한 사무에 대해 시·군에서 부정·비리 등의 잡음을 일으키거나 도의회가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감사해야 할 만큼 말썽이 된 사례가 거의 없다. 충남도의회는 지난 6월 정례회의에서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의결한 후 올해부터 15개 시·군 위임사무에 대한 행정감사를 실시하려고 별러왔었다. 그러나 시·군 의회와 공무원노조, 시장·군수협의회 등의 반발 논리에 막혀 시작도 못한 채 백기를 들고 말았다.

충남도의회는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감사 결과의 효율성과 진정성을 높이기 위해 시·군 행정사무감사 계획을 1년간 잠정 유보한다”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외형상 이유는 ‘사회적 갈등 최소화’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민들의 지탄을 의식한 도의원들 스스로 구태적 갈등만 부추긴 채 발을 뺀 것’이란 냉소적 언론 보도가 지배적이다. 결국 시·군의회나 공무원노조의 반대에 부딪히고, 지역 여론을 설득하지 못한 도의회의 초라한 패전(敗戰)이다. 선인들의 교훈대로 과유불급의 꼴이 됐다.

도의원 중에는 아직까지 지방자치법조차 미숙한 의원도 있다. 이젠 도의원들도 권한과 책임에 걸맞은 전문지식을 연찬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광역의회 의원들의 위상을 높이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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