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결혼 37년이 되는 이번 결혼기념일은 손자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정겨운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며느리가 여름방학을 끝내고 출근하면서 유치원 다니는 큰손녀 등원과 퇴원을 챙기고, 손녀 둘이 손이 맞아 어지럽힌 집안 정리도 하며 우리 나름대로 사회단체나 교회 모임을 하다 보니 기념일을 지나치기도 한다. 아들네 가족과 우리집에서 저녁을 먹고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인데”라고 잠깐 확인했지만, 손녀들의 웃음 속에 금세 묻혀버렸다.

아내는 이름이 둘이다. 주변 친구나 지인들에겐 김정미로 불리지만, 공적 서류나 여권 등엔 본명인 김정숙을 쓴다. 애들이 학창시절에 가족사항을 적을 일이 있을 땐 혼란을 겪기도 했다. 늘 주변에서 김정미로 불리는데 학교엔 낯선 본명을 써야 하니 왜 이런 불편을 겪는지 잘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몇 번이나 애들에게 상황을 설명했지만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한국전쟁 직후 세대의 상황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듯했다.

아내는 강원도 춘천에서 방앗간 집 큰딸로 태어나 그 흔한 보릿고개도 모르고 윤기가 흐르는 하얀 쌀밥을 먹고 자랐다. 어렸을 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해 집에선 ‘금실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단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본명인 김정숙으로 불렸는데, 한국전쟁의 상흔이 뚜렷하고 휴전선에 인접해 반공의식이 유별난 지역인 게 문제였다. 친구들은 그저 재미로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과 이름이 같다며 “빨갱이래요, 빨갱이래요!”라며 놀려댔단다. 요즘 같으면 이런 경우 학교의 주선으로 이름을 쉽게 바꿀 수 있지만 당시엔 행정 처리가 까다로웠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본명과 별도로 김정미로 부르도록 해 놀림에서 벗어나도록 했단다. 지금도 가족이나 친구들은 김정미가 익숙하지만, 서류상으론 다시 김정숙이 된다.

요즘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이니와 쑤기’란 애칭으로 부르다 보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젠 남북을 아우르는 여사님 이름이 됐으니 본명을 당당히 쓰라며 권하게 됐다. 그래도 어린 시절 학교에서 놀림거리가 되고, 또 어른들이 빨갱이 김일성 부인을 들먹이다 보니 아내는 아직도 상처가 남아있는 듯하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아내와 같은 또래지만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다 보니 그런 놀림을 받지 않은 듯하다. 성격이 활달하고 유쾌해 상남자 못지않은 것도 우리집 ‘쑤기’와 비슷하지만 아내는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늘이 있다.

아내는 춘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고향은 전남 함평이다. 장모님은 함평 해보면 모평에서 방앗간 집 딸로 곱게 자라 결혼했으나, 한국전쟁 당시 인민유격대가 주둔하던 불갑산 토벌작전인 ‘대보름 작전’을 전후해 함평지역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할 때 첫 남편이 산으로 피신했다 붙잡혀 희생됐다. 2007년 이후 두 차례의 진상조사가 있었고, 현재까지 확인된 함평민간인학살사건 피해자만 1164명이라고 한다. 장모님이 과부가 돼 아들 하나를 데리고 친정에 돌아왔을 때 장인어른은 방앗간의 젊은 직공이었는데, 둘이 눈이 맞아 춘천으로 달아나 살림을 차렸다. 두 분은 방앗간을 하며 금세 살림이 폈는데, 고향에서 장인어른을 불러 새장가를 보내는 바람에 춘천과 함평에서 두 집 살림을 하게 됐다. 처가는 이렇게 세 집이 얽힌 복잡한 가족사로 다 상처를 입게 된다.

따지고 보면 장인어른이나 장모님의 잘못이라기보다 우리 현대사의 회오리에 휘말려 피눈물을 흘렸으니 다 희생자인 셈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비명에 잃은 큰처남은 이 씨로, 김 씨 동생들과 어울리면서도 겉돌다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우리 ‘쑤기’도 새 살림을 차린 아버지와 못내 불편했지만 그분 또한 영면하셨고, 훌쩍 큰 키에 시원시원하던 장모님의 여장부 스타일은 이제 회갑을 넘긴 아내에게 남았다. 두 애들이 결혼해 자녀를 둘씩 둬 이제 10명 대가족의 마님이 된 우리 ‘쑤기’, 놀림받던 어린 시절의 상처와 역사의 채찍에 휘몰려 어쩔 수 없이 고통을 줬던 부모님 시절을 이제 다 용납하고, 손자들에게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그런 세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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