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붕준 대전과학기술대 광고홍보디자인과 교수/전 대전MBC보도국장/뉴스앵커

 

추석이 다가오면 괜히 마음이 들떠 콧노래를 부른다. 긴 연휴에 특별히 갈 곳이 없는 사람도 명절을 앞두고는 옛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이처럼 옛날이 그리운 것은 벌써 이만큼 와 있는 세월과 친구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옛날엔 ‘동무들아 모여라’ 했지만, 북쪽에서 ‘동무’를 상시 사용하는 바람에 ‘반공’을 부르짖던 시절 교육으로 이 말마저도 사라졌다.

텔레비전 수상기가 가정에 거의 없던 시절, 앞 이마 박치기로 일본 선수를 쓰러뜨렸던 ‘김일 프로레슬링’을 보기 위해 만화방 단골 손님이었던 시절. ‘학교종이 땡땡땡’ 노래도 불렀지만 요즘은 수업 시작과 종료에는 멜로디만 있는 ‘녹음 음악’으로 대체되었다. 동네 교회의 종소리는 소음 민원으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10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10리’ 표현도 국가 표준 도량형 환산규정으로 사라졌다. 정겨웠던 시골 원두막은 이동 컨테이너로 대체되고 물레방아는 고급 한정식 식당 소품으로 전락(?)했다. 팽이 위에 여러 가지 색칠을 해 돌 때마다 무지개처럼 보였던 시절! 철사로 삼촌이 대충 만들어 주었던 썰매는 플라스틱 썰매로 진화되었다. 한복은 놀이동산과 고궁 입장 때 착용하면 할인 대상으로, 널뛰기와 연날리기는 추석이나 설 명절 이벤트 행사장에서만 볼 뿐이다. 동네 소방서 망루에 올라갔을 때 얼마나 자랑했던가! 그 당시 망루보다 높은 건물이 없어 망루를 하늘보다 높다고 했었다. 지금의 아파트 숲과는 달리, 그때는 모두 개인 주택으로 망루에 올라 아낙네들이 마당에서 목욕할 때 훔쳐보기도 했다고 한다. 망루에서 눈으로 식별해 멀리서 불빛이 움직이면 ‘불이다!’ 하고 소리치며 나팔을 불었던 시절! 나팔소리를 들으면 불구경 가는 것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 당시에는 공기도 깨끗해 반딧불이나 호롱불을 불로 착각, 출동했다니….

헌책방 골목도 갈수록 보기 힘들다. 헌책방은 책과 함께 문화도 함께 나누는 공간이었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학생을 ‘고학생’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에게는 구세주였던 곳이다. 헌책방에는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서가에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어 곳곳에 사다리가 놓여 있었다. 수십 군데가 있었던 대전의 헌책방은 이제 단, 몇 군데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급전 마련을 위해 세간살이를 들고 찾았던 서민들의 애달픈 삶의 현장이었던 전당포도 신용카드 등장으로 사라지고 있다. 통일호와 비둘기호 열차도 뒤안길로 사라졌고, 비둘기호 3등 열차는 한 량에 87명이 정원이었지만 짐 얹는 선반까지 앉는 등 300명 가까운 콩나물열차로 운행하다 자취를 감추었다. 추석 열차표 구입을 위해 역 광장에서 쪼그리고 앉아 밤을 꼬박 새우던 시절은 이제 인터넷예매로, 만원버스에 승객들을 몸으로 밀어넣으며 “오라이!”를 외치던 시내버스 안내양과 토큰, 연애편지는 스마트폰의 카톡에 밀려나고 있다. 윷놀이와 교실에서 몰래 훔친(?) 분필이나 돌로 땅 바닥에 줄을 그어 놀이하던 땅따먹기’와 ‘딱지치기’, 여자아이들의 전유물이었던 ‘공기놀이와 고무줄놀이’, 이 모두는 소중한 추억과 가치로 추석을 앞두고 그리움을 더 하게 한다. 이나마 휘영청 보름달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시골 장날의 풍경에서 옛 추억이라도 음미해보는 것이 다행인지 모르겠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맞는 추석이라고 선물이 뇌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세태로 변했으니…. 앞으로도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또 한 살 먹는 내년에 다시 추석을 맞을 때 “옛날엔 이랬지?” 하며 추억을 또 새기지 않을까 그려본다.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그 시절! 그러나 지금은 오늘을 사는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지금 이 시간의 ‘크로노스’는 어쩔 수 없더라도 ‘카이로스’를 멋지게 활용하면 어떨까! 추억은 추억대로 예쁘게 남겨두고 날마다 오늘을 신나게 살자. 어제는 어쩔 수 없는 날이었지만 오늘은 만들어갈 수 있는 날이다. 그러면 내일은 꿈과 희망으로 멋진 수채화로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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