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이 따로, 치우는 이 따로"

▲ 배출 날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버젓이 버려진 쓰레기 더미 뒤로 ‘우리 부모님이 치우고 있습니다’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18일 오전. 한낮의 늦더위가 자리 잡을 무렵 대전 서구의 한 공원엔 노란 조끼를 입으신 어르신들이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한 손엔 쓰레기봉투를, 또 다른 한 손엔 집게를 든 이들은 쓰레기 하나라도 놓칠세라 굽은 허리를 쉽게 들지 못한 채 열심이었다. 그 뒤로 내걸린 현수막에 쓰인 ‘우리 부모님이 치우고 있습니다’란 글귀는 씁쓸한 세태를 꼬집었다. 앞서 어린 학생들이 슬픈 표정의 그림과 함께 ‘쓰레기 무단투기하지 말아요’, ‘공원에 담배꽁초 금지’ 등 손수 문구를 적은 푯말을 이곳저곳 꼽아놨지만 이미 뽑히고 부서지고 되레 쓰레기가 돼 결국 흔적없이 사라진 바로 그 자리였다.

김 모(84) 할머니는 “금연이라고 붙어 있는 스티커는 무색해진 지 오래다. 피우지 말고 버리지 말라는 요구를 전혀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페인트 통이나 큰 종량제봉투를 하나씩 가져다 놓으면 한 곳에만이라도 버리겠지 했다. 하지만 그래도 소용없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곳인 만큼 좀 주의해줬으면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지역 내 원룸이 밀집돼 있는 곳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종량제봉투에 담기지 않은 것은 물론 일반·재활용 쓰레기가 한데 섞여 있고 먹다 남은 음식 쓰레기는 다른 쓰레기들과 뒤덤벅 엉켜 있다. 그렇게 쌓인 쓰레기더미는 차선을 넘을 정도다. 특히 원룸이 새롭게 들어서기라도 하면 어느샌가 쓰레기 배출 장소가 늘어난다. 서구 조례상 쓰레기 배출 장소를 지정하도록 돼 있지만 인근 주민들이 불편하다는 볼멘소리가 높아 쓰레기가 모인 곳이 지정장소가 돼 버리는 형국이다. 쓰레기가 모인 곳이 자연스럽게 ‘버리는 곳’으로 자리를 내주는 식이다.

비단 이 동네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구 다른 지역, 청소 차량이 없는 깨끗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난 2013년 쓰레기 자동집하시설인 크린넷이 설치된 한 대학가 주변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크린넷이 있지만 여러 곳에서 불법투기 된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경고문만 무안하게 붙어있다.

공염불을 만들어 버리는 쓰레기 무단 배출에 지방자치단체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대전시는 내달 11일까지 추석 연휴 쓰레기 관리 특별대책을 시행한다. 추석 연휴기간 시민과 귀성객들이 편안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더불어 재활용품은 월·목요일에,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담아 오후 8시 이후 자신의 집 앞에 배출해달라는 요령 역시 상시 안내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효과성이 미약하다. 근본적인 문제가 시민의식에 달려 있는 탓이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원룸지역의 경우 굉장히 어렵다. 단속반 등이 지속적으로 다니면서 본인 집 앞에 놓으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반영되지 않는다”며 “하기야 자신의 집 앞에만 버려도 고마울 지경이다. 이웃 집 앞에 버리는 일들이 속출, 분쟁이 일어나고 민원이 생기는 등 그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들이 상당하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글·사진=정관묵 기자 dhc@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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