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용 대전시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

얼마 전 뉴스에 여중생 폭행사건에 대해 집중 조명하는 소식을 접했다.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더욱이 그것을 SNS에 올리면서까지 자랑을 하는 행태를 보니 분노를 넘어 공황이 오기도 했다. 업무를 보면서도 그 뉴스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소년법 폐지 등 각종 사회적 이슈를 불러온 이 사건은 전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삼삼오오 모이면 이 문제에 대해 가해 학생에 대한 성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피해 학생은 단순히 신체적 치료를 넘어서 정신병원까지 입원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훗날 그 학생은 과연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가해 학생은 피해 학생이 당연히 맞을 짓을 했다고 한다. 폭력에 대한 반성의 기미도 없다. 한 가해 학생의 부모는 되려 아이들 문제를 가지고 너무 떠드는 것 아니냐라며 반문한다. 만약 가해 학생 중 한명이 그렇게 집단폭행 당했다고 하면 그 부모는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식이 귀하면 남 자식도 귀한 것이다.

학원폭력은 전부터 사회문제로 대두돼 왔다. 집단따돌림이라 불리는 왕따나 음지에서 행해지던 집단폭력이 이제는 공개 집단폭력으로까지 확대돼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이를 자랑인 것처럼 떠드는 등의 사회적 정신병폐로까지 변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황폐해졌을까? 현대사회가 물질만능주의로 변하면서 각종 사회문제가 대두됐다. 학원폭력도 그중의 하나다. 학교에서의 싸움은 오늘의 문제만이 아니다. 필자도 그리고 선대에도 분명 학교에서의 친구들끼리의 싸움은 있었다. 다만 이 문제가 이슈화되지 않은 것은 단순히 친구 간의 사소한 주먹다짐으로 끝나고 끝난 이후에는 다른 친구들보다도 더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필자도 중학교 때 싸운 친구와 지금까지도 그때를 회상하며 술 한잔 기울인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단순히 급우 간의 싸움이 아닌 어른들도 상상하기 힘든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가? 때리고 맞는 신체적 폭력도 있지만 집단 따돌림 등 정신적 폭력도 큰 문제다. 언젠가 자살한 학생이 자살 전 유서를 통해 다른 친구한테 한 말이 생각난다. 자살한 학생은 “학교에서 말을 해봤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과연 그 학생을 따돌림한 급우들은 그 학생이 자살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거기까지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마 그 학생들은 평생 짐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짐이 무겁게 어깨를 누를 것이다.

70~80년대 학창시절에는 ‘얄개’라는 영화와 ‘사랑이 꽃피는 나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배경으로 학생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렸다. 국민들이 모두 좋아했다. 그러나 90년 후반부터 급격히 일본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일본 사회의 어두운 병폐인 이지메 등도 같이 들어왔고 이는 고스란히 우리 학교문화에 녹아들었다. 또 IT문화가 급속히 발전한 2000년대 들어서는 학생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PC게임 등에 빠졌고 각 종 폭력문화에 노출됐다. 그리고 학생문화는 다른 변화보다도 더 빠르게 변화했고 이를 수용하는 것도 더 빨랐다. 우리 세대들은 단순히 변화와 수용을 우리의 청소년 시기의 기준으로만 바라봤고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냥 감기처럼 그때만 넘어갈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우리의 큰 오산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당시에 이런 변화를 우리가 인지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서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했더라면 과연 지금의 심각한 문제까지 도래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분명 지금의 실태까지는 도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집에 들어가면 아들과 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다. 매일 PC앞에만 있는다고 뭐라할 게 아니라 내가 자식들의 입장에서 한번 PC게임도 할 생각이다. 자식들이 나에게 먼저 다가오길 기대하지 말고 내가 먼저 다가가겠다. 아이들과 같이 행동하고 고민한다면 우리 아이들도 점차 변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들이 변한다면 우리 아들과 딸들도 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이 있다. 우리 자식들의 문제를 법이나 전문가 집단에게만 맡기지 말고 우리 스스로 해결하고자 노력할 때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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