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5차 세계의 심장 캄보디아 의료봉사활동의 중요한 의미 중 세 번째는 쇠사슬로부터의 해방운동(CHAIN-FREE MOVEMENT)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사실 이 운동은 이미 2015년 6월부터 시작된 정신보건활동으로 이 운동을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은 세계의 심장 상임이사이자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의 정신과 전문의 안병은원장이다. 안원장은 지난해부터 격월로 캄보디아 깜퐁츠낭으로 날아가 조현병 등의 중증정신질환자들과 뇌전증(간질) 환자를 중심으로 꾸준히 진료활동을 펼치고 있다. 처음에는 프사헬스센터, 캄퐁츠낭 시에 위치한 썸머라홍 정신건강증진센터, 깜퐁렌지역 등을 중심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쭐끼리, 깜퐁뜨롤락 등을 더해 6개의 시.군으로 늘려 매번 순회하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금요일 오전까지 자신의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곧바로 인천공항으로 달려가 저녁비행기로 캄보디아로 떠난다. 그러면 11시가 거의 되어서야 프놈펜공항에 도착하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다. 다시 프놈펜에서 깜퐁츠낭까지는 차로 약 2시간 정도 가야 한다. 그러면 새벽 2-3시나 되어야 깜퐁츠낭에 도착한다. 그리고 잠시 눈을 붙이고 나면 그 다음날 새벽부터 화요일 오전까지 쉴 틈도 없이 6개 지역을 두루 다니며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돌본다. 그리고는 다시 두 시간을 차로 이동해 프놈펜공항에 도착하면 밤 12시 가까이, 인천공항으로 오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러면 밤새 날아와 수요일 새벽에 공항에 도착하여 다시 수원으로 달려가 오후부터는 자신의 병원에서 예약된 환자들을 진료한다. 정말 누가 시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고된 일정이지만 그는 어김없이 격월로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만나러 깜퐁츠낭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비를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그 고난의 행군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의 열정과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CHAIN-FREE MOVEMENT이다.

캄보디아 의료캠프에서 정신과 진료가 처음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안병은원장도 초창기에는 의료캠프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그런데 3년 전, 프사헬스센터에서 캠프가 진행될 때였다. 조현증을 앓는 분이 오셨는데 준비해 간 약에는 정신과 약이 없어 할 수 없이 영양제 등을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했었다. 그때 안원장은 치료에 필요한 약이 없음을 아쉬워했고, 다음 달부터 곧바로 정신과 약을 준비해 가지고 가서는 작게 정신과 진료를 시작했다. 다른 진료과목도 마찬가지 이지만 특히 정신과는 지속적인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기에 그동안은 자신이 감내해 내야 하는 몫이 너무 크기에 선뜻 나서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환자가 눈앞에 있는데 외면하는 것이 의사로서 못내 아쉬웠나보다. 그는 15년 6월부터 큰 결단을 하고 깜퐁츠낭의 정신질환자들을 본격적으로 돌보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경은 넓어지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쉽게 접근이 가능한 지역을 순회하며 환자들을 돌보다가 올해부터는 센터에서 배를 타고 2시간 가까이를 가야하는 오지마을까지 확대된 것이다. 지역을 확대한 것은 자신의 의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지역에서 만난 환자들은 이미 한국에서는 사라진 발목에 쇠사슬이 채워진 중증질환자들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너무도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CHAIN-FREE MOVEMENT이다. 환자 보호자들에게 약만 잘 먹으면 쇠사슬에 묶어놓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하고 묶여있는 환자들을 인격을 가진 건강한 사람으로 세워내기 위한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CHAIN-FREE MOVEMENT는 1793년 인간 동물원으로 유명했던 프랑스의 비세트르 병원에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쇠사슬에 묶여 생활하는 것을 보고 “환자에게도 인격과 인권이 있고, 이것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환자들의 쇠사슬을 풀어주기 시작한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깜퐁츠낭 정신보건 의료진에게도 정신질환자들을 무조건 가두고 감금하는 것을 넘어 체계적인 치료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갖가지 정신보건 관련 지식들을 전수하여 환자들을 인격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어쩌면 그의 이런 행동은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다. 아직 정신보건의 개념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나라에 하루살이에게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폭력적일 수도, 뜬구름 잡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중증정신질환자들을 한 인간으로 세워내기 위한 정신과 의사로서의 길을 오늘도 가고 있는 것이다. 샬롬. (다음 주에 계속해서)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