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전 위원장

1년 전만 하더라도 2017년 9월에 박근혜 씨와 이재용 씨가 감옥에 갇혀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1600만의 거대한 촛불이 온 나라를 뒤덮으며 이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침묵으로 방관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민들이 촛불광장과 국정농단, 탄핵에 대한 정보를 나누면서 실질적인 정치의 주체로 등장했다. 말하고, 조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일부 운동권의 역할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몫이 되고 있다.

실로 1987년 민주항쟁을 뛰어넘는 혁명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전히 구태의연하고 변화의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들도 많다. 대통령 해외 순방 기간 중에 공무원의 공직기강을 확립하라는 정부 부처의 공문 같은 것들이 그런 사례다. 얼핏 사소해 보일 지도 모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대통령이 나라 밖에 가 있는 동안 당면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할 것이며, 공직자로서 품위와 청렴의무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하지 말 것이며, 신속한 보고 체계를 확립할 것이며, 재해와 재난 등 각종 안전사고를 예방할 것이며, 심지어 당직근무를 철저히 하라는 말까지 줄레줄레 나열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내에 있든 없든 공무원이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 아니겠는가. 마치 왕조시대의 칙령같이 구시대적인 공문을 수백만의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수시로 읽어야 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일면이다.

정부가 상명하달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익숙해져 있다면 국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야당 대표가 통렬히 지적했다시피 우리 정치가 국회의 담장 안에 거대한 기득권의 요새를 차리고 정권이 바뀐 것만 알지 세상이 바뀐 줄 모르고 있다. 그의 말을 더 인용하면 대한민국 선거제도는 ‘재벌과 중소기업의 원하청 관계만큼이나 불공정한 적폐’다. 자유한국당의 현재 지지율은 10% 남짓에 불과하지만 차지하는 의석은 37%이고 지난 경남도의회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59%를 득표하고도 의석의 90%를 차지한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국민이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없기에 현대국가의 정치제도는 대의정치를 기본으로 한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선출한 대표자들이 국민의 위임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고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선거제도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다수 국민은 노동자 서민들인데 국회는 부자와 권력자들로만 구성돼 있다면 민의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런 선거제도의 대표적인 것이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이고 바로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던진 표가 1등을 만들지 못하면 사표가 되니까 정당이나 후보의 됨됨이를 보고 투표하지 않고 당선 가능성을 놓고 투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로는 대의정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은 역사적·경험적으로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치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나라들 중에서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하고 있는 곳은 미국, 영국, 캐나다뿐이고 다른 나라는 모두 비례대표제를 선택하고 있다. 정당의 득표율대로 공정하게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것은 선진 정치제도의 핵심이다. 지금처럼 지역구 후보에게 1표, 정당에 1표를 던지는 1인 2표 방식으로 하면서도 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 국회의석이 우선 배분되도록 하면 그야말로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나라도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 비례대표는 불과 47명밖에 되지 않으며 그나마 정의당 소속 의원 4명을 제외하고는 당원들이 직접 선출한 비례대표가 아니라 당의 권력자가 지명한 사람들이다. 이런 제도를 애써 고집하는 것이 현재의 국회다. 진정 바꿔야 하는 것들이 정부와 국회에 쌓여 있는데 변화를 거부하고 버티기만 하면 대통령을 탄핵한 국민이 또 나서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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