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속 놓치기 쉬운

13구간 한반도 지형 보러왔다가 ...
담백한 생태탐방로 매력에 흠뻑

왜 이제서야 보았을까

독락정~고성 가는길, 들꽃과 호반 장관
가을 소풍길처럼 완만한 트레킹코스

 

여름과 가을 어디쯤에서 낮엔 매미가, 밤엔 귀뚜라미가 혼자된 마음을 충분히 달랜다. 

낮과 밤의 큰 일교차처럼 둘은 참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만 이 같은 평온함은 결국 오래가지 않을 걸 알기에 소중하다. 

그 소중함은 익숙함과 대척돼 소중함을 잃어버릴까 익숙함을 최대한 멀리하고 싶지만 인간의 본성이란 게 참으로 사악하다. 익숙함을 추구해서다.

‘대청호오백리길… 그곳에 가면’은 최대한 시즌1·2에서 소개하지 않은 곳을 찾지만 익숙함을 쫓아가기도 했다. 

이번 역시 익숙함을 따라 발길을 옮기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최대한 멀리하고자 했다. 대청호오백리길에서 한반도지형의 둔주봉을 찾았지만 익숙한 모습보다는 다른 모습을 보고자 했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만은 않은…

둔주봉은 대청호오백리길 13구간에 위치한 곳이다. 높지 않은 곳에서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대개는 이곳을 찾아 한반도 지형을 보기 위해 둔주봉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둔주봉으로 곧장 향하지 않고 둔주봉 생태탐방로를 완주하기로 했다. 

둔주봉 생태탐방로는 둔주봉을 중심으로 대청호를 한 바퀴 도는 구간이다. 총연장은 10㎞ 조금 넘는다. 향수길인 자전거길을 통해 소개한 안남면을 출발지로 정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여름 때문에 햇살은 따갑지만 곧 가을의 초입에 들어섰단 걸 느끼게 해줄 바람이 볼을 때린다. 

안남면사무소를 지나 안남초등학교를 오른쪽에 두면 지평선이 쭉 이어진다. 어림잡아 1㎞지만 걷는 데 큰 무리는 없다. 

길섶의 코스모스와 저 멀리 보이는 대청호를 육안에 담고 걷다 보면 독락정이 나온다. 독락정은 1607년인 조선 선조(宣祖) 40년 주몽득(周夢得)이라는 장군이 세운 정자다. 

독락정이 세워진 뒤 주변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많은 선비들이 찾아왔고 후대에 와서는 유생들의 학문 연구 장소로 이용됐다고 한다. 

유생처럼 정자세로 독락정에 앉아 자연경관을 충분히 즐긴 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독락정 이후부턴 왼쪽에 대청호가 있다. 

독락정을 뒤로 하기 때문에 흡사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는 이름 모를 유생같은 기분이 든다. 

대청호가 바로 옆에 있는데 대청호오백리길 구간 중 대청호에서 가장 가깝게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대청호에 사는 물고기가 숨을 쉬기 위해 첨벙거리는 소리가 이곳에선 천둥번개보다 더 크게 놀랄 정도로 크다. 

계속해서 완만하기 때문에 걷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첫 번째 목적지인 고성에 다다른다. 

이곳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는 건 오래된 성이 이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금강과 주위를 둘러싼 산지 때문에 방어에 매우 유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고성의 어원에 대한 유추가 제법 맞을 것이란 생각에 두 번째 목적지로 향한다. 

안남면에서 고성까지처럼 역시 완만한 도로가 이어진다. 곳곳에 낚시를 즐기기 위한 적은 인기척만 느껴질 뿐 매우 조용하다. 

두 번째 목적지인 금정골에 도착하면 이젠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안남면사무소에서 독락정, 그리고 고성까지의 길이 완만한 트레킹코스였다면 금정골부턴 세 번째 목적지인 피실까진 산림욕장같은 코스가 이어진다. 

물론 대청호가 계속 오른쪽에 있지만 나무와 수풀에 가려져 아까보단 조금 멀리 떨어졌다. 울창한 나무가 하늘을 덮어 자연스럽게 기분 좋은 채광을 만든다. 

어제 깨끗하게 세탁한 이불로 잠을 청해 주말 아침 정말 산뜻하게 눈을 떴을 때를 상상하던 그 햇살이다. 

앉을 곳도 곳곳에 있는 데다 길 역시 완만해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아 경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속도를 낼 수 있다. 

안남면사무소에서 피실까지 천천히 대청호를 보며 휴식을 취하면 1시간 50분 정도 걸린다.
 

◆(둔주봉에)왔노라, (한반도 지형을)보았노라, (사진을)찍었노라

피실에 도착하면 또 다른 풍경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목적지까지가 초보자를 위한 코스였다면 피실에서 둔주봉까진 본격적인 수풀림을 헤쳐 나가야 하는 상급자 코스다. 

비록 900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길은 한 사람만이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고 제대로 길이 나있지 않아 여차하면 길을 잃을 수 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탓인지 엉겅퀴 때문에 제대로 속도를 내기도 힘들다. 바로 옆에 대청호가 있지만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우거지다. 

길을 잃었다 착각마오

피실~둔주봉 수풀림 우거진 상급자 코스
굴곡진 곳 많아 지치기 십상 완급 조절을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사진찍기 좋은 명소 둔주봉 전망대
좌우 반전 한반도 지형 정면서 조망

 

 

신록과 단풍이 어우러진 그늘막이 햇살을 막아주나 코스가 힘들어 땀이 절로 난다. 코스도 제법 굴곡진 곳이 많아 지치기 십상이다. 

산악회에서 다녀간 흔적을 쫓아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샌가 대청호에서 이는 물결 소리 외에 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워낙 우거졌기 때문에 냇물소리가 울린다. 물가엔 바위도 큼직한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어 잠깐 앉아 지친 다리를 풀어도 된다. 아니 꼭 잠깐 앉아야 한다. 

피실엔 앉을 곳이 없기 때문에 원기충전을 위해선 필수다.

다리의 긴장을 모두 풀고 다시 걸음을 옮겨 30분 정도면 편안한 길이 나온다. 수풀림은 소나무 숲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등산로도 눈에 띌 정도로 잘 정비됐다. 

이제는 트레킹에서 벗어나 등산이 시작된다. 등산로라고는 하지만 잘 정리돼 힘들지 않다. 그러나 급격한 오르막이 두세 군데 있기 때문에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가뜩이나 피실에서 많은 힘을 뺏기 때문에 오르막 중간에서 주저앉을 수 있다. 등산로는 통나무 계단인 곳도 있지만 미끄러운 편이다. 

모든 고난을 이겨낸 후 둔주봉이란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다. 피실에선 이정표를 보기 힘들고 길도 정리돼 있지 않아 길을 잃었을 거란 공포감이 있었는데 이정표가 이 모든 걸 해소해 준다. 

둔주봉은 등주봉이라고도 불리는데 풀이하면 오르는 선박이라는 뜻이다. 홍수가 나면 봉우리에 배를 묶어 뒀기 때문이라고 한다. 피실에 나루터가 곳곳에 있는 점을 보면 제법 신빙성이 있다.

둔주봉을 향해 약 20분 정도 걸었을까. 소나무가 시원하게 뻗은 숲길이 끝나고 정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반도 전망대다. 

로마 공화정 말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7년 폰토스의 파르나케스 2세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로마 시민과 원로원에 보낸 승전보에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고 했다. 

기껏해야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지만 피실부터의 험난한 여정이 끝나는 순간에 든 감정이다. 다만 대청호오백리길… 그곳에 가면 취재팀은 사진을 찍는 임무야 말로 마지막이기에 ‘찍었노라’로 바뀔 뿐이다.

한반도 지형으로 유명한 강원도 영월과 둔주봉이 다른 점은 바로 반전이다. 둔주봉의 한반도는 좌우가 뒤집어진 채다. 

남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산자락에 살짝 가리지만 풍경을 만끽하기엔 충분하다. 정자에 앉아 한동안 한반도를 바라보며 땀을 식힌 뒤 출발지인 안남면사무소로 향한다. 

이곳 역시 완만함과 오름이 번갈아 등장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아선 안 된다. 25분이면 충분히 안남면사무소에 도착할 수 있다. 곳곳에 마을이 보이기 때문에 평온함을 통해 마음을 힐링할 수 있다.

평점    ★★★☆

대청호 옆을 걸을 수 있다는 점은 굉장한 이점이다. 전체 코스는 길지만 점차 날씨도 선선해졌고 안남면사무소에서 피실까지는 길이 완만해 누구라도 쉽게 걸을 수 있다. 그러나 피실부터는 길이 갑자기 험해지므로 피실 전인 금정골에서 둔주봉으로 향하는 걸 추천한다.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둔주봉의 한반도 전망대는 시원한 시야를 제공한다. 정자에 위치한 거울에 한반도 지형을 보이게 사진을 찍으면 된다. 하지만 아직 일교차가 커 한창 더울 시간엔 녹조가 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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