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국 ㈔한국예술문화진흥회 이사장(전 대전시의회 의장)

며칠 뒤면 우리의 고유 명절인 한가위 추석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인(先人)들은 공평무사(公平無私)한 마음을 ‘거울처럼 잔잔한 물’, 즉 명경산수(明鏡山水)에 비유하기를 즐겼다.

옛날 중국 진(晉)나라의 악광(樂廣)을 대하고 나서 상서령(尙書令)의 위근(衛瑾)이 그의 사람됨을 평하기를 “이 사람이야말로 사람의 수경(水鏡)이다. 그를 대하면 광채가 밝게 비치듯 구름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과 같다”라고 극찬해 마지않았다.

여기서 수경(水鏡)이란 ‘물과 거울’이란 뜻으로 잔잔한 수면이 거울 같음을 말하는데, 사람을 수경에 비유할 때는 그의 인격이 한 점 흐림 없이 깨끗해 모든 사람의 사표(師表)가 될 만한 것을 일컫는다.

물은 절대로 공평한 까닭에 수평을 잡아야 할 때 반드시 물로 표준을 삼지 않을 수 없다. 거울 또한 지극히 밝아 한 점 흐린 구석이 없는 까닭으로 못생긴 사람이 아무리 자기의 모습이 못나게 비쳐 보이더라도 그는 결코 거울을 나무라거나 원망하는 일이 없다.

사심이 있는 사람의 경우는 제 아무리 공평하게 일을 처리했다 해도 그 공정성에 의심을 품거나 원망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이 물과 거울 같은 공정함을 지니기도 어렵거니와 물과 거울과 같이 공정함을 인정받기도 또한 어렵다. ‘물과 거울은 사(私)가 없다’라는 수경무사(水鏡無私)란 말은 위와 같은 이치를 가리켜 한 말이다.

조선 왕조의 피 비린내 나는 비극 중 하나인 단종 사건은 세조 집권 이후 오랫동안 그 진실이 금기에 부쳐져 왔다. 입이 있어도 말 못하고 붓이 있어도 쓰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사실을 듣고 자란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1454~1492) 선생이 세조 찬탈에 항거하다 순절한 육신(六臣)의 사적이 점차 없어져 가는 것이 안타까워 그들의 전기(傳記)를 써 후세에 남기려 했다. 그의 문생(門生)과 친구들은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해 이를 말렸지만 끝내 듣지 않았다.

내 한 몸의 죽음을 두려워해 충신(忠臣)의 자취를 역사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고 고집하고, 마침내 ‘육신전(六臣傳)’을 써 세상에 내놓았다. 비록 그는 생전의 행적이 화근이 돼 부관참시(副官斬屍)를 당했지만 역사 앞에 진실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준 사심 없는 조선의 선비였다.

종림의 선조이며 조선조 중기 학자인 정암 조광조(靜岩 趙光祖, 1482~1519) 선생은 사림학파(士林學派)의 영수(領袖)로서 도학사상(道學思想)을 바탕으로 개혁정치(改革政治), 도덕정치(道德政治)를 실현해 나라의 기강을 튼튼히 하고자 힘썼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는 간사한 무리 남곤, 홍경주 등의 모략에 걸려 나뭇잎에 꿀로 글씨를 써 벌레가 갈아먹게 한 주초위왕(走肖爲王, ‘조 씨가 왕이 된다’라는 의미) 등으로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자신의 바른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의 수경무사(水鏡無私)한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현대인들까지 그 높은 뜻을 숭상하고 있다.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운 세상에 수경(水鏡)과 같이 평정하면서도 공정한 마음을 변함없이 지니고 살아가는 일은 그에 따르는 참기 어려운 시련과 고달픔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값지고 오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마음을 흔들어 놓는 유혹이나 비난의 소리는 언젠가 자취 없이 흘러가 버리는 뜬구름이거나 한 때 몰아닥치는 바람소리와도 같은 것으로 결코 오래가거나 힘 있는 것일 수 없다.

모든 면에서 급변하는 사회로 치닫는 오늘날 우리는 보다 넓은 의미의 시민정신을 정립해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혈연·학연·지연 등 친소(親疏) 관계에 얽혀 있던 지난날의 인습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추석 명절을 앞둔 이 때 우리는 지난날 수경무사(水鏡無私)의 정신으로 살아간 선인(先人)들의 정신을 한 번쯤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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