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우 한남대학교 홍보팀장/전 한국일보 기자

 

명절 연휴, 친지들과 만났을 때 흔한 자녀교육 소재가 도마에 올랐고, 어김없이 누군가 스티브 잡스 얘기를 꺼냈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혁신가를 길러내야 하는데 한국사회와 우리교육은 그에 적합하지 않다는 등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흔한 레퍼토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법 먹듯이 거론하는 것이며, 대체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쪽에서 일어나는 질문이 있다. 우리 모두가 스티브 잡스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럴 일도 없겠지만, 그런 지향이 올바른지 의문이다. 잡스의 혁신과 융합, 도전, 열정 등에 존경을 보낸다. 어디 잡스뿐이겠는가. 우리가 우러르는 위인은 많다. 그런 위인들을 우리 삶과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할까? 그가 지닌 덕목을 배우는 것은 좋지만 그의 성공(?)을 주목하는 관점은 불편하다. 때론 그런 덕목이 있어서 성취를 이룬 것인지, 성공했기 때문에 그런 덕목이 일컬어진 것인지 헷갈린다.

성공을 말할 때 돈과 권력, 명예와 단순히 동일시하는 것은 철 지난 노래다. 요즘은 행복과 가치에 더 무게를 둔다. 자신의 행복감과 타인을 위한 삶의 가치 등을 성공의 요소로 주장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물론 높은 위치에 올라야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으며, 행복감이 더 커질 것이란 이들도 있다. 고지를 점령하라는 ‘고지론’이다. 이는 성공 가능성도 높지 않고, 치열한 경쟁이 수반된다.

반면 ‘저기 높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고자 함은 어떠한가. 성경 속 비유처럼, 길에서 강도를 당한 피해자를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서 헌신적으로 돌봐주는 선한 사마리아인 말이다. 우리가 길에 쓰러졌을 때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사람은 높은 산 정상의 ‘위인’이 아니라, 우리 이웃의 ‘의인’이다. 평범한(?) 의인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의인은 위인처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그 존재의 소중함을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명절 연휴에 만났던 가까운 친구와 가족 친척 중에도 나에게 든든한 동산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다. 오랜 세월 변치 않고 그 자리에서 묵묵히 성실하고 정직하게 소박한 삶을 지켜가는 정겨운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삶은 존경받아 마땅하기에 자녀교육에 스티브 잡스와 더불어 소개할 필요가 있다.

높은 산과 오름직한 동산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소중할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모두가 높은 산을 향해 몰려갈 필요는 없다. 누군가 성실히 걷다 보니 산 정상에 올랐다면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내주면 된다. 하지만 누군가 큰 산에 도전하지 않고 야트막한 동산이 되어서 가정을 위해, 친구들을 위해, 소속된 공동체를 위해 의롭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에게도 박수를 보내자. 스티브 잡스가 나의 친구이면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자주 만나서 삶의 정을 나누는 친구가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면 더 좋겠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는 세상이 살 맛 나는 곳일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도 서로에게 그런 오름직한 동산이 되는 꿈을 꾸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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