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직 을지대 교목

 

주형직 을지대 교목

인생을 선택이라 말할 때 선택과 함께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게 불안과 두려움이다. 누구나 어느 때고 예외 없이 불안하고 두려움 속에 살아간다. 경제학자 존 K.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책에서 현대를 불확실한 시대로 규정했다. 그는 경제가 발전할수록 사회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이제는 확신에 찬 경제학자도, 자본가도, 사회주의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불확실성이야말로 불안과 두려움을 키우는 토양인 셈이다.

영화 아비정전, 중경삼림을 연출한 홍콩의 영화감독 왕가위(王家衛)는 완성된 시나리오 없이 촬영을 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를 취재했던 기자가 “조금 더 완벽하게 준비해놓고 촬영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묻자 왕 감독은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한 때는 없다”고 답했다. 완성되지 않은 시나리오를 갖고 촬영부터 하는 것이 쉽게 이해되진 않지만 그의 말은 충분히 공감이 된다.

간혹 자신은 실패를 경험해 본 일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우 완벽하고 치밀하며 주도면밀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실패할 만한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성공이 보장된 경우가 아니라면 잘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대체로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철저하고 완벽할 만큼 준비를 한다. 그만큼 계획성 있게 일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신감이 없거나 도전을 겁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철저하고 완벽한 것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성공 확률이 적으면 쉽게 뛰어들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가치있는 일에도 실패를 두려워해 손을 대지 못한다. 철저하게 준비하기 때문에 큰 실패를 하거나 큰 사고를 내진 않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스타일이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게 언제나 준비하고 계획된 대로 풀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거나 수치로 계산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또 아무리 빈틈없이 준비를 해도 완벽한 결과란 없다. 언제나 예기치 않은 상황은 찾아오며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로 곤혹스러울 때가 있는 것이다. 산술적 계산이나 분석된 자료보다 경험에서 오는 느낌이나 감이 성공확률을 높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해보지 않고 겁을 낼 필요가 없으며 부딪치고 깨지면서 경험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얼마 전 열심히 화단을 정리하는 교수님을 발견했다. 이른 아침이긴 하지만 아직 햇볕이 따가운데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시는 모습이 궁금해 뭐하시냐고 여쭤봤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꽃을 좀 보여주려 한다고 대답하셨다. 가만히 보니 꽃나무를 옮겨 심고 있었다. 봄도 아닌데 지금 옮겨 심어도 꽃이 사느냐고 물었다. 교수님은 이렇게라도 꽃을 심고 싶은 이유를 말씀하셨다.

좁은 캠퍼스에 학생들이 쉴 만한 공간도 별로 없으니 학생들의 정서가 메마를까 염려된다는 것이다. 길가에 꽃이라도 있으면 학생들 마음이 조금이라도 넉넉해질까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가을꽃이라도 심어주려는 교수님의 마음이 참으로 귀하게 느껴졌다.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 가을꽃이라도 보여주고 싶은 학생들을 향한 사랑이 뜨거운 햇볕 속에서 땀 흘리게 했던 것이다.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건 불안과 두려움을 얼마나 끌어안을 수 있는가에 달렸다. 불안과 두려움을 이길 힘은 결국 사랑이다. 삶의 의미를 성공과 실패에 두면 불안과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지만 현실의 불안과 두려움을 끌어안으면 어리석어 보이는 일에도 가치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행동하기 위해 너무 생각하고 준비하다가 정작 움직여야 할 순간에 행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두레박이 물을 긷기 위해 우물 속으로 서슴없이 들어가듯 먼저 행동하는 결단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꿀 한 숟가락은 벌이 4200번가량 꽃을 왕복해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광야에 양들이 해 뜨기 전에 일어나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건 새벽이슬을 먹기 위해서라고 한다. 해가 떠서 이슬이 모두 대기 중에 사라져 버리면 충분한 수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길 없는 숲속으로도 망설임없이 들어가야 숲속으로 난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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