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문의면 상장리 19구간

작은 용굴 입구

호반의 숨은 보물 '작은 용굴'
동굴 속 기암괴석 억겁 세월이 빚은 예술품
조명서 발산된 오색빛 물결, 신비로움 더해

 

지역 특유의 전설, 혹은 마을에서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구전설화. 이들을 듣다 보면 흥미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눈으로 확인한 적은 없어 신빙성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재미를 준다. 경제가 워낙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전설과 구전설화는 이제 과거의 먼 얘기다.

그러나 여전히 전설이나 구전설화 등을 듣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된다. 남자가 무협지에 빠지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아니면 어렸을 적 할머니가 머리맡에서 해주던 옛이야기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
 

1980년 대청댐이 완공돼 생긴 대청호는 비록 역사는 짧기만 나름의 전설을 갖고 있다. 과거 대청호가 생기기 이전부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엔 한 가지 전설이 남아 있다.

 

# 아홉 마리의 용, 그리고 한 마리의 이무기

한 마을에 10마리의 이무기가 살았다. 이들은 이곳에 오랜 시간을 거주하며 덕을 쌓았고 조만간 용이 돼 승천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덕을 쌓기가 지겨워진 한 마리의 이무기가 난폭하게 변하더니 이곳의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어업으로 생을 이어가던 마을 주민은 난폭해진 이무기 때문에 더 이상 배를 탈 수 없었고 점차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다.

 

질서가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하늘이 노해 열 마리의 이무기를 동굴 안에 가둬버렸다. 한 마리의 이무기를 나머지 이무기가 잘 보살피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마을은 다시 어업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폭해진 이무기는 동료 이무기의 잔소리에 지쳤는지 동굴을 빠져나와 다시 물고기를 마음껏 먹으며 마을을 어지럽혔다.

 

우선 하늘은 훌륭하게 덕을 쌓은 동굴 속 아홉 마리의 이무기를 용으로 승천해 하늘로 올렸다. 그리고 난폭해진 이무기는 용으로의 승천을 막고 이곳의 물을 모두 메말라 버리게 했다. 물이 없어진 이무기는 결국 목숨을 다하고 만다.

대청호오백리길 19구간의 충북 청주 상당구 문의면 상장리에서 전해지는 전설이다. 이곳은 과거 구룡마을이라 불렸는데 옛 이름처럼 전설 속 열 마리의 이무기가 머물던 동굴이 실제 존재한다.

 

하지만 작은 용굴이라 불릴 정도로 동굴 자체는 크지 않고 입구 역시 밖에선 보이지 않아 19구간에서도 자칫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곳이다.

입구는 충분히 열 마리의 이무기가 머물렀을 정도로 웅장하다. 큰 절벽을 깎아 만든 듯한 곳에 거대한 바위들이 입구를 장식한 데다 우거진 나무가 입구를 중심으로 펼쳐져 신비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동굴 입구에서 울리는 물소리도 충분히 호기심을 갖게 한다.
 

 

작은 용굴의 입구는 입구가 풍기는 분위기에 비해 크지 않다. 입구로 들어가면 설치된 조명이 동굴을 밝혀준다. 조명도 사실 최근에야 설치됐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 아니라고 한다.

아홉 마리의 이무기가 똬리를 틀지 못했을 정도로 동굴 역시 입구처럼 큰 편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높다.

 

설치된 조명은 시간이 지날수록 색깔이 바뀌어 색별로 다른 느낌을 준다. 붉은 빛은 으스스하게, 푸른 빛은 신비하게 동굴을 각각 비춘다.
 

작은 용굴의 중심지로 발걸음을 옮기면 한줄기 빛이 들어온다. 30m 높이의 천공에서 들어오는 햇빛인데 아홉 마리의 선한 이무기가 동굴에서 용으로 승천할 때 생긴 천공으로 등천창굴이라 불린다. 용으로 승천했을 당시 마찰이 생겨 용 비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 균형의 아름다움

작은 용굴에서 509번 도로를 통해 북쪽인 문의IC 방면으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노현습지공원은 내비게이션에 입력해도 정확한 주소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크게 알려진 곳은 아니다.

노현습지공원은 입구부터 전형적인 시골의 가을 분위기가 나는 곳이다. 길섶의 코스모스와 황금빛으로 물든 논, 그리고 멀리 보이는 대청호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 장관이다.

노현습지공원 입구에 서면 가장 먼저 자갈밭과 장독이 반긴다. 빌딩숲에서 보기 힘든 광경 때문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리고 장독대 위에 앉은 잠자리까지 가을이 성큼 왔음을 알게 한다. 한껏 방문객을 반긴 자갈밭과 장독대의 긴 행렬이 끝나면 이번엔 습지공원 초입까지 데크길이 나그네를 안내한다.

데크길은 짧게 연속적으로 이어져 습지공원의 초입인 너른 터로 연결된다. 잘 가꾼 나무와 나무 앞 벤치가 한 쌍처럼 균형감 있게 꾸며진 게 특징이다.

 

균형의 美 '노현습지공원'
작은 용굴서 문의 IC방면 도보로 20분 거리
길섶 코스모스, 황금빛 논, 대청호 삼위일체

 

거대한 나무 사이와 나무의 잎 사이로 침투한 바람이 상쾌하게 코를 쑤신다. 균형감에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시원한 바람에 마음이 들썩인다.

너른 터를 나오면 본격적인 습지가 시작된다. 습지에 바다라 할 정도로 넓게 분포한 억새는 높아진 일교차만큼이나 높게 고개를 들고 은은한 회색빛으로 자신을 한껏 꾸민다.

가을에 접어들어 가을비가 오지 않은 관계로 습지는 우리네 키우느라 고생한 어머니의 피부처럼 푸석하지만 이제 제철을 맞은 억새의 은은한 회색은 데크길 건너의 화려한 황금색과 대비돼 더욱 도드라져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게 한다.
 

습지의 바다에 설치된 돌다리를 건너면 끝엔 섬처럼 우뚝 솟은 하나의 작은 공원으로 이어진다. 섬 위엔 푸른 나무 세 그루와 이들과 쌍을 이루는 벤치가 다시 균형미를 선보인다.

어느 벤치에 앉아도 습지의 바다 전체와 저 멀리 대청호를 볼 수 있다. 피부로 바람을, 귀로 바람에 이는 억새와 벼를, 코로 대청호를 한껏 머금은 바람의 냄새를 느낄 만큼 시원하다. 한껏 다가온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평점★★★★☆
작은 용굴 자체가 크지 않아 오랜 시간 즐기기는 힘들다. 작은 용굴은 구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된 비지정문화재(문화재보호법이나 시·도의 조례에 의해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 중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인데 이 때문에 자치단체의 관리는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앞에 위치한 매점이 이곳을 정원처럼 잘 꾸며놨기 때문에 머무를 충분한 이유가 있다. 매점 앞에 10m 상당의 분수대와 작은 용굴 입구가 어우러진 모습은 장관이다. 

인근의 노현습지공원 역시 가을에 잘 어울리는 곳이다. 노현습지공원이란 대청호오백리길 이정표는 있지만 내비게이션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충북 청주 상당구 문의면 노현리 684-8를 검색하면 된다. 

이곳은 너른 터에 벤치가 곳곳에 있어 작은 용굴에서 구입한 차나 커피를 마시며 대청호를 바라보기에 좋다. 잘 익은 벼와 코스모스, 대청호를 한 화면에 담으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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