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회 취재부국장

 

중·고생 또는 그 또래 10대 청소년들의 폭력 문제를 두고 도처에서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수법이 잔인하고 갈수록 흉포화돼 그저 어린 치기(稚氣)로 받아들이기엔 적이 심상찮다는 관전평이 주류다. 여러 명이 한 명을 들입다 폭행한 것도 모자라 그 장면을 촬영해 협박하며 보복을 운운하지 않나 심지어 여학생의 경우 성매매까지 강요받지를 않나 사안이 터질 때마다 무르춤해져 절로 혀를 차게 한다.

질풍노도의 시기, 웃자란 감정에 의한 주먹질은 어느 세대나 공감할 문제다. 다만 갈수록 폭력에 어른들의 비열이, 비겁이, 파렴치가 더해진다는 게 께름칙하다. 때로는 한 술 더 뜬 선정적 보도와 요즘 제일 무섭다는 일부 네티즌들의 행동거지가 본질보다 더 살벌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요즘 아이들이 유독 감때사나운 것인지 반문해 본다. 그들의 부모 세대를 돌이켜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내 이팔청춘도 그랬다.

한 학급이 50∼60명이라면 최소 1/4 이상은 흡연을 했다. 학급 물주전자에 막걸리 받아와 마시거나 양주를 가장한 싸구려 럼 같은 것을 마시기도 했다. 흡연이든 음주든 걸리면 선생님들로부터 엄청난 매타작이 뒤따랐고 운이 없으면(?) 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지만 이를 그저 일탈로 취급하는 시대였다.

이른바 침 좀 뱉고 다리 좀 떤다는 아이들의 행동은 가관이었다. 대개는 주먹자랑에 그쳤으나 둔기나 흉기를 휘두르는 일이 있었고 극단적으로 어떤 학교에선 집단 패싸움 중 회칼과 염산까지 동원한 경우도 있었다. 여학생 중에는 면도칼을 씹어가며 상대방을 위협하는 ‘무서운 누나’들이 있었고 개중에는 남학생을 대상으로 속된 말로 ‘삥’을 뜯기도 했다. 뉘 집 자식들인지 여간내기 아니라는 소릴 들었다. 이런 옛적 켯속이 재미를 더해 드라마나 영화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당시 불특정 다수의 청소년들에게도 도를 넘은 폭력은 두려움이었다.

희한하게도 이런 문제들이 지역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거나 신문 지상에 오르내린 기억은 거의 없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무대접이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는 두루뭉술한 묵인도 있었지만 군사정권 시절은 학교도 사회 정화차원에서 바라봤는지 어떤 대책도 없이 퇴학이라는 솎아내기로 문제아들을 격리시키곤 했다. 공권력이 개입된 일이 없지는 않았으나 학교 담장 안에서 폭력을 처형했다.

애써 옹호하자면 그래도 그때 ‘앙팡 테리블’들의 폭력은 약자를 향하는 요즘보단 덜 비열했고 덜 비겁했으며 덜 파렴치했다. 그것이 학교의 처분이 무서웠고 사회의 색안경이 두려웠기 때문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가해자를 보호하는 어떤 장치도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모두 선량할 수 없다면 불량 청소년은 사람 사는 사회의 단층이다. 단언컨대 국가와 사회와 가정이 폭력에 무뎠던 시절이 더 불량했다. 먹고 살기 급급했던 그때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폭력을 덜 문제 삼거나 덜 고민했을 뿐이다. 이를 큰 문제 삼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사회는 차라리 방관자가 나은 ‘사후약방문’만 쓰고 있고 학교는 더 이상 겁을 먹어야 할 존재가 아니며 가정은 내 자식만 귀하게 다루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문제다.

유독 약자에게 구박도 떼로 하고 폭력도 떼로 하는 비겁한 행위는 가해자 역시 약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본다. 마치 정어리 떼처럼 뭉쳐 위력을 과시하는 약자들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도, 학교도, 가정도 상어 노릇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데다 디지털이라는 장치가 아이들로부터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가로채고 그래서 혼자가 된 아이들은 괴롭히지 않으면 괴롭힘을 당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정어리처럼 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문제다.

요즘 아이든, 옛날 아이든 덜 여물기는 마찬가지다. 먼저 연약해진 사회라는, 학교라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부터 손질하고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은 뱉는 게 아니라 삼키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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