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 존재의 이유

▲ 로코코 회화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화가 프랑수아 부셰가 그린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헤라클레스(Hercules)와 옴팔레(Omphale)

에우리토스(Eurytos)와 헤라클레스의 지극한 악연을 ‘궁합이 상극’이라 표현하면 될까. 에우리토스는 오이칼리아의 왕으로 우리로 치면 주몽인데 이상하게 헤라클레스만 나타나면 그곳엔 피바람이 분다.

보통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결코 상대방을 해치지 않는 그리스 문화에서 나름 존경받던 인물들이 사사건건 부딪히는 건 특이한 일이었다.

활 시합을 해서 딸 이올레(Iole)를 신부로 주기로 해놓고 모른척했던 왕을 가슴에 담고 떠났던 헤라클레스는 훗날을 기약했고 기묘하게 그가 떠나던 날 왕의 말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모두가 헤라클레스를 의심했지만 그를 존경했던 에우리토스의 막내아들 이피토스(Iphitus)는 그럴 리 없다며 자신이 따라가 그 오해를 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어렵게 자신에게 도착한 이피토스를 성에서 던져 죽이고 말았다. 헤라의 저주가 또 임했다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그냥 살인습관인 듯했다.

이유 없는 살인은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했다. 헤라클레스는 속죄를 위해 신탁을 받으러 떠난다. 그러나 어떠한 신탁소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고 끝내 가장 영(靈)발이 세다는 델피로 갔다. 역시 피튀아 신녀들도 이해 안 되는 살인귀의 신탁을 거부해버렸고 화가 난 헤라클레스는 신녀들이 신탁을 받는 삼발이 솥단지를 떼어가 버렸다.

델피(Delphoi) 신탁의 사업밑천을 가져갔으니 수호신 아폴론(Apollon)은 격노했다. 자존심 강한 그와 붙으면 끝없는 전쟁으로 치닫는다는 걸 모두가 알았기에 제우스(Zeus)가 말리고 나섰다.

“동생아. 헤라클레스가 당하면 포기할 아이가 아니야. 알잖아, 반드시 복수하러 온다.”

이 말에 아폴론이 깨끗하게 복수를 포기하는데 헤라클레스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렇게 헤라클레스는 가까스로 신탁을 받고 리디아 옴팔레 여왕에게 팔려가 3년간 노예 아닌 노예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면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가 한 일은 여자 옷을 입고 옴팔레를 행복하게 하는 거였다는데 실을 감고 베를 짜고 음식을 만드는 등 여자의 역할을 했다. 그동안 옴팔레는 헤라클레스의 방망이와 사자 가죽을 쓰고 다녔다. 영웅들은 신기하게 한번은 여성 코스프레를 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여러 가지 입장을 경험해봐야 비로소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여긴 것 같다. 더 정확히 짚자면 여자가 사람취급 못 받던 시절이었으니 가장 낮은 자의 삶을 살아봤다고 생각하면 쉽다. 옴팔레는 배꼽이라는 옴파로스의 여성형이다. 음기가 충만한 그리스의 옹녀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냥 옴팔레였다.

그림은 엉덩이와 가슴의 화가라고 불리는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의 기가 막힌 그림이다. 부셰의 그림들은 부끄러운 듯 터질 듯한 볼을 하고 있다. 육감적이다가도 따뜻해지는 그의 그림은 여전히 살아있다. 로코코(Rococo) 시대의 대명사와도 같은 화가다. 화가들은 옴팔레와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놓치지 않고 각각의 방식으로 담았다.

기간테스는 복수형, 단수형은 기가스다. 그래서 기간토마키아는 기간테스와의 싸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헤라클레스 존재의 이유

끝없는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살인을 하고도 신들은 헤라클레스를 막아줬다. 이유는 무엇일까. 신은 결코 인간의 교만을 눈뜨고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에게만은 관대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기간토마키아(Gigantomachy) 때문이다. 이게 헤라클레스가 존재하는 이유다. 신들은 제우스가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티탄(Titan)들과 전면전을 벌였다. 티타노마키아(Titanomachy)라 부른다.

그러나 티탄들의 어머니였던 가이아(Gaia) 눈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처음엔 제우스 편에 섰으나 혼만 내주고 끝낼 줄 알았던 전투는 결국 아들들의 죽음과 감금으로 이어졌고 말 안 들으면 때려 달랬더니 불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아틸라스(Atlas)는 지구를 둘러메는 형벌을 받았고 조금은 다른 이유지만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도 산에 묶여 간이 쪼아 먹히는 벌을 받았다. 가이아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남편이 죽을 때 흘린 피로 임신됐던 24명의 기간테스들은 그 순간 낳게 됐다. 기간테스(Gigantes)는 제우스를 향해 전쟁을 선포했고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올림피아의 신들은 스스로를 위해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싸워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신탁에 물으니 신은 기간테스를 죽일 수 없다고 했다. 이때 준비해 놓은 비밀병기가 헤라클레스였다. 헤라클레스는 이미 완숙한 담력과 살인귀 본능으로 기간테스들을 죽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기선 제압된 후 전선 곳곳에서 신들의 승전보가 들려왔다.

바로 이 전쟁을 위한 인간의 영웅이 헤라클레스다. 이 때문에 어떤 잘못과 실수도 감춰줘야만 했던 거다. 신, 인간, 심지어 자연도 그를 막아줬다. 세 번에 걸친 신들의 전쟁 중 가장 절정의 순간이 기간토마키아였고 이것만 마무리하면 하늘과 땅의 안정이 찾아올 수 있었다.

이렇게 전쟁은 끝났다. 전쟁이 끝나면 그 대지위엔 문화의 꽃이 핀다. 이상한 커넥션이지만 전쟁은 지지만 않으면 축복으로 돌아온다. 일단 인구가 줄고 재건축으로 도시가 정비되며 산업이 활성화된다. 기간산업들이 동반 호황을 누리는 건 덤이다. 문화를 바탕으로 생활수준은 큰 폭으로 향상된다. 게다가 적군의 전통과 전쟁 중 약탈한 물건이 들어와 문화는 꽃처럼 다양해진다. 전쟁 중 죽어간 전사들과 고아, 과부, 노인들을 생각하면 해선 안 될 말이지만 전쟁의 속성 중엔 장점이 상당히 많다. 나도 알고 놀라고 있는 중이다. 이제 올림포스에 문화의 꽃이 필 것이다.

그리스 곳곳에 세워진 작은 교회 에끌레시아 아끼. 산자에겐 아름다운 경고판이 돼주기도 한다.

◆죽음도 또 다른 삶이었다

그리스 곳곳에 작은 집들이 지어져 있다. 도로가나 해안가에 특히 많이 세워져있는 이 예쁜 인형의 집은 무엇일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이유는 귀엽지 않았다.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게 되면 그 자리에 작은 교회(에끌레시아 아끼)를 만든다고 했다. 교회의 허락을 받고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진도 들어있고 촛불, 인형, 꽃 등이 들어있다. 도로가나 해안 절벽에서 사고나 또 다른 방법의 죽음이 있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곳엔 특히나 많았다.

작은 교회는 죽은 자를 위로하기도 했지만 산자에겐 사고가 빈번한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아름다운 경고판이 돼주기도 했다. 사고가 많은 곳에 에끌레시아 아끼가 많으니 자연히 운전을 조심하게 된다. 그리스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들은 삶도 죽음도 색다르게 표현하나보다. 문득 내려 한참 앉아 있다가 죽은 자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경관과도 너무나 잘 어우러져 그리스를 그리스답게 하는데 한 몫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5분 빨리 가려다 50년 빨리 간다’, ‘졸다가 추돌하면 80%가 사망’, ‘그러다 죽어유~’, ‘한번 두 번 졸음운전 평생후회, 평생고통’ 읽다보면 기분 나쁜 경고들이 다양하다. 사고 나라고 비는 건지 뭔지. 심지어 처참하게 부서진 자동차를 전시하는 휴게소도 있었다. 안타깝지만 그런 말들이 하나도 고맙지 않다. 그 돈으로 고속도로 통행료나 내려라. 내 안전은 내가 지킬 테니.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경고는 폭력이고 협박일 뿐이다.

글·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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