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시 아파트 공급방식의 후분양제 도입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후분양제 도입의 필요성이 각계에서 대두됐고, 정부도 이 같은 여론이 비등할 때마다 후분양제 시행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를 하겠다며 금방이라도 시행할 듯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지금껏 후분양제는 시행되지 않았다.

최근 정부가 다시 후분양제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언급하기 시작했다. 누구랄 것 없이 후분양제가 합리적이고 소비자 중심적 제도라는 데는 동감하지만 그 시행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세상에 어떤 상거래가 미래에 생겨날 재화에 대해 미리 값을 치르고 2~3년을 기다린 후에 완제품을 받는단 말인가.

선분양제란 절대적으로 부족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형적으로 나타난 제도로 주택건설사에 절대 유리한 구조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주택을 짓기 위해 마련한 임시제도가 오랜 시간 지속 시행되며 다수의 소비자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불합리성 투성이다. 내일 먹을 점심식사 값을 오늘 미리 식당에 지불하는 것이 타당할 수는 없다.

대개의 가정에서 아파트 한 채는 전 재산이다. 그런 물건을 구입하면서 모형으로 된 구조물과 견본주택만 보고 구매를 결정하도록 허용했으니 선분양제는 보통 모순된 구조가 아니다. 모형과 견본만 보고 주택을 구입했다가 실물이 생각했던 것과 달라 실망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제 주택보급이 일정 수준에 올라섰으니 한시적으로 마련했던 선분양제를 후분양제로 전환하는 것이 맞다. 건설사들이 부지만 확보하면 입주예정자들로부터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아가며 집을 짓는 현재의 구조는 보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제도로 전환돼야 한다.

정부는 우선 공공부문의 아파트를 먼저 후분양제로 선회한 후 차츰 민간부문으로 시행을 확대해 나간다는 구상을 비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물러서지 않고 로드맵대로 제도를 확대해 나가길 바란다. 이제는 소비자 중심으로 주택의 공급 문화가 바뀌어야 할 때이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시장의 합리성이 확보될 뿐 아니라 분양권을 가지고 전매를 통해 아파트 값 거품을 키워나가는 반 서민적 행태도 바로잡을 수 있게 된다. 시공사의 부도로 분양자들이 피해를 입는 형태도 사라지게 된다. 사실상 후분양제를 실시하는 것이 여러모로 옳다.

뒤늦게라도 정부가 후분양제 카드를 뽑아든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껏 여러 차례 후분양제 도입이 공론화됐다가 수그러들기를 반복했다. 1977년도에 마련된 지금의 제도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 더 이상 미룰 때가 아니다. 현실감 있게 소비자 입장으로 돌아서 후분양제를 도입해야 하는 시점이다.

<김도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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