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형 청운대학교 교수

 

지난달 서울시내 240번 버스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아이가 혼자 내렸으니 버스를 세워달라는 엄마의 애원을 버스 기사가 무시했다’라는 글이 발단이었다. 순식간에 수많은 글이 SNS에 쇄도하면서 논란이 크게 확산되었다. 많은 네티즌들이 엄마의 애타는 심정에 동조했으며 버스 기사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서울시가 나서 “안전문제 때문에 정류장이 아닌 곳에 버스를 세우고 사람을 내리게 하기는 어려웠다” 또 “버스 운행 규정상 버스정류장 외 승·하차는 불가능하다”라는 발표를 한 후에야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이냐?’라는 것과 ‘그러한 때 발생되는 책임은 누가질 것이냐?’라는 의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 해결책으로 등장하는 것이 새로운 매뉴얼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지금 있는 규정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과 변화무쌍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이다. 매뉴얼이 마치 사회의 여러 문제나 사건, 사고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키처럼 곳곳에서 등장한다.

매뉴얼은 업무를 표준화하려는 작업지시서이다. 업무의 순서, 수준, 방법 등을 순서에 따라 업무를 자세화하여 구체적으로 문서화한 도구다. 최적의 상태에서 각 상황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한다. 따라서 처음 업무를 익히거나 시작할 때 또는 일상적 업무를 수행할 때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한다. 특히 공장과 같이 기계화와 자동화된 곳에서는 생산 혁명을 가져온 수단이었다. 매뉴얼의 효율성이 인정되면서 타 분야로 그 사용이 열풍처럼 퍼져 나갔다. 또 사회의 진보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되었고 매뉴얼화가 잘된 사회가 발전한 사회로 생각되었다.

매뉴얼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수많은 업무를 연속적으로 수행할 때 그 순서나 항목을 빠뜨리지 않고 빈틈없는 업무처리를 할 때 큰 역할을 한다. 평상적 업무를 어떻게 할지 몰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갈등을 없애 주거나 작업자에게 업무의 자신감을 높여 준다. 그렇지만 매뉴얼이 사람과 관련되면 그 한계가 쉽게 드러난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것에 강점이 있는 매뉴얼이 사람과 관련된 일에는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상에서 조차 반복적이지 않고 기계적이지 않다.

240번 시내버스 기사는 버스 운행 규정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해도 버스를 세워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의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기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버스 기사가 운행 규정을 위반해서라도 버스를 정차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되면 미리 정해진 규정이나 매뉴얼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매뉴얼에 나와 있는 규정을 그대로 따라했어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매뉴얼을 잘 지켰느냐 지키지 않았느냐에 좌우되어 것이 아니라 매뉴얼을 뛰어 넘는 탁월한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매뉴얼이 가진 문제는 상황에 따른 융통성과 임기응변식 대처를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상황에 순조롭게 대처하지 못하는 결점이 있다. 따라서 사람이 하는 일을 매뉴얼화하면 할수록 사람은 그것에 얽매이게 되며, 자신이 갖고 있는 창의성과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매뉴얼이 두꺼워지는 만큼 관리자의 목소리는 커지고 현장에서 목소리는 작아진다. 매뉴얼을 따르다 보면 인간이 점차 기계나 로봇과 다를 바 없는 역할만 하게 된다. 개인의 가치가 매몰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공지능(AI) 시대의 변화에도 역행한다.

세상의 많은 것이 매뉴얼화되는 것, 인간이 매뉴얼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 이것이 곧 진보이거나 더 나은 미래상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간의 관계를 돈독히 함으로써 행복을 구현하는 존재다. 이런 마당에 우리가 가진 기쁨, 행복과 같은 감정을 어떻게 효율성만으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그가 가진 가치와 그것을 실현하려는 역량에 의존해야 과거에 거두지 못했던 탁월한 성과도 거두기 마련이다. 문제를 매뉴얼에 한정하지 말고 개인의 역량을 증진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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