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꼬마 아이들 전유물?…편견 깨기위해 오늘도 구슬땀

가을이 오긴 한 건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던 저녁,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한 태권도장으로 고등학생, 대학생, 취업준비생, 직장인 등 10대에서 30대까지 젊은 청춘 아홉이 모였다. 새하얀 도복 위로 빨간 띠를 두른 이들 얼굴엔 지난한 하루의 피곤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다 큰 성인이 왠 태권도를 하겠냐마는 이들에겐 태권도가 그들만의 무도가 아닌 우리의 무도다. 이들은 삶에 지쳐 내 자신을 잃어갈 때 온전한 정신만은 붙들어 준 태권도가 그저 고맙다고 입을 모았다. 정휘호 관장과 파란만장한 인생 전성기를 향해 가고 있는 청춘들을 18일 만났다.

시곗바늘이 오후 8시를 가리키자 얼굴을 가득 채우던 웃음기는 이내 사라지고 진중함과 묵직한 기합 소리만이 체육관을 매웠다. 가벼운 유산소로 시작된 운동은 어느 덧 이들의 머리부터 발끝을 땀방울로 가득 채웠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발차기. 수련생들은 저마다 절도 있는 동작을 만들기 위해 한 동작 한 동작 신중을 기했다. 그중 예사롭지 않은 발차기 실력을 뽐내던 이가 눈에 띄었다. 이날 체육관에 처음 발을 들였다는 직장인 곽배근(32·세종시 보람동) 씨는 “그동안 운동을 하고 싶어 여러군데 문의했는데 여기는 직장인도 많고 프로그램도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 열심히 운동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절정에 다다른 수련은 이내 태권도의 모든 정신이 오롯이 담겼다는 품새로 이어졌다. 긴 시간 땀을 흘린 탓에 힘들 법도 하지만 그런 내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동작엔 힘이 넘쳤다. 그 비결엔 또 한 명의 청춘, 정 관장이 추구하는 소통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그 역시 인생의 황금기를 향해 가고 있는 젊은 관장이다. 비슷한 또래의 수련생들과 같은 시대, 같은 관심사를 공유해왔기에 성인 수련생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성인의 수련생들이 사소한 고민과 걱정을 서슴없이 정 관장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이유다. 여군이 꿈인 대학생 김지수(21·유성구 덕명동) 씨가 그 많은 체육관들을 두고 기어이 이곳을 선택한 연유이기도 하다. 김 씨는 “처음 대전 성인 태권도를 찾다가 왔을 때 도장 분위기가 너무 밝았다. 젊은 관장님과 젊은 수련생들로 구성되다 보니 운동 내내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되고 내 스스로 처음은 혼자였지만 지금 여기 있는 모두가 이제는 서로 의지가 되는 존재가 됐다”며 뿌듯해했다.

스트레스 해소, 건강관리, 시험 준비 등 수련생들이 처음 태권도를 시작한 데엔 각양각색의 이유들이 있었지만 수 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들은 한 가지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물론 그 꿈은 이들만의 것은 아니다. 태권도라는 무술이 성인들이 즐길만한 무도인가라는 세간의 비웃음 속 그 편견을 어떻게든 깨기 위해 지금껏 사리사욕 없이 수련생을 지도해 온 정 관장이 꾸는 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그걸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 관장은 “올해 12월이 됐을 때 성인 수련생 모두 블랙벨트를 둘러매고 운동하는 게 목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수련생들이 단순히 태권도를 즐기는 것을 넘어 사람이 되고, 제대로 된 무도가 무엇인지 깨닫는거다. 그런 면에서 우리 수련생들이 지금은 부족한 게 없는 건 아니지만 잘만 가다듬으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노력이 있다면 꿈은 어느새 현실이 된다고 하던가. 9명의 청춘들과 정 관장의 시계는 이미 12월 겨울을 향하고 있다.

글·사진=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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