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화 이후 '장농 카드' 된지 오래

 

십 년 전만해도 병원 진료를 위해선 건강보험증이 꼭 필요했지만 요즘은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만 대면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사유로 인해 건강보험증은 재발급되고 있다. 재발급엔 한 해 평균 60억 원이 들어가는데 이 건강보험증은 피보험자 우편 수령 이후 곧바로 서랍속에서 숙면에 들어간다. 건강보험증 재발급 무용론이 대두되는 이유다.

1963년 의료보호법 제정 이후 1977년 전국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자 의료보험이 시행된 지 올해로 딱 40년이 됐다. 이때부터 건강보험증은 병원을 갈 때면 반드시 챙겨야 할 서류였다. 그러나 2008년 3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과 맞물려 병원 진료 시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만 있으면 건강보험증 없이도 전국 어느 병원에서나 수월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건강보험이 전산화되면서 이젠 굳이 건강보험증을 찾을 이유가 사라진 거다.

정보통신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자연스럽게 종이 건강보험증도 폐지 기로에 놓였다. 건강보험증을 찾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고 재발급 등 불필요한 행정력, 예산 낭비를 줄이자는 생각에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정보공개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9800만 건의 건강보험증이 발행됐다. 이를 찍어내는 데 소요된 용지비는 약 33억 원, 우편비용은 약 260억 원이었다. 찾는 이 하나 없는 종이 건강보험증 발급에 한 해 평균 60억 원의 예산이 쓰인 셈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건강보험증 발급을 중단할 수도 없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12조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가입자에게 건강보험증을 발급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동시에 시행규칙을 통해 가입자·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하거나 변경 신고를 접수한 경우 공단이 건강보험증을 즉시 발급하도록 했다. 종이 건강보험증 발급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거다.

이 때문에 종이 건강보험증을 대체할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전자건강보험증이 거론되고 있다. 전자건강보험증은 본인사진과 이름 등 최소한의 정보를 보험증 표면에 표기하거나 칩 내부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현행 건강보험증의 도용을 방지하고 환자진료 이력을 안전하게 수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이미 세계 선진국에선 보편화돼 있고 점차 그 역할이 전자주민증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전자건강보험증이 감염병 대응의 수단으로 재평가되며 도입에 탄력을 받는 듯했지만 일각에서 제기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 등의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건보공단은 전자건강보험증 도입 문제는 시간을 두고 지속 추진하되 우선 건강보험증을 선별적으로 발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부터 공단에 신고된 건 발급하고 국가기관으로 연계돼 오는 건 발급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직장·지역가입자 역시 별도 발급하지 않고 안내문만 발송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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