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마지막 전투 영화화

민족분단의 현실과 전쟁 고찰

1950년 6월 25일. 한민족으로서는 절대 잊지 못할,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참사 6·25전쟁이 발발한다. 지금도 그때의 전쟁 참사를 잊지 않고자 기념일로 지정해 고인들을 위한 넋을 기리고 있는데, 일요일 새벽 4시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돼 순식간에 낙동강 근처까지 밀렸다가 인천상륙작전으로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전쟁 초반은 다들 알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러나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상이 완료되기까지 전쟁이 어떻게 진행됐고 끝났는지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6·25전쟁을 배경으로 삼은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동막골’ ‘적과의 동침’에서도 역사의 마지막은 다루지 않았고, 교과서에 나온 6·25전쟁에 대한 설명도 전쟁이 터지고 3년 후 휴전을 했다는 내용이 전부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빠뜨린 건 아닐까. 전쟁의 시작도 잊지 말아야 하지만, 마지막을 모른다면 이 슬픈 역사는 계속될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고지전’을 봐야 할 이유이다.

◆최전방 격전의 전장에서 벌어진 그곳만의 사정
1953년 1월 서울. 널문리(판문점)에서는 군사 분계선을 다시 그어야 한다며 남북한이 한 치의 양보 없는 협상 통에 휴전은 난관에 봉착한다. 그런 답답한 상황을 보고 한소리한 방첩대 소속 강은표(신하균) 중위는 현재 매일 주인이 바뀌는 애록고지에 가 내통자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동부전선 케이멘 캠프로 출동한다.

그곳에서 6·25가 터지고 며칠 뒤 인민군에게 생포됐던 친구 수혁(고수)을 만나 반가움을 표하는 은표. 2년 전, 이등병일 때 헤어졌는데 중위로 만나 감회가 새롭다. 다음날 신임 중대장의 명령으로 대공포를 설치했다 북한군에게 모두 뺏긴 것도 잠시, 수혁의 지휘 하에 금방 되찾고 그들은 애록고지를 재점령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며 치열한 전투를 한다.

그런데 겨우 진지를 접수하니 간부들이 아지트에 모여 북한군이 남긴 편지를 읽고, 이것을 본 강 중위는 순간 이들이 내통자가 아닌지 의심을 해 수혁을 다그친다. 이 최전방에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전쟁의 끝에서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일까.

◆전쟁의 비참함이 휩쓸고 간 자리
‘고지전’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애록고지다. 이를 위해 경남 함양의 한 민둥산을 실감난 전쟁터로 변신시켰다. 곳곳에 폭격의 흔적과 전투의 참사가 배어있는 이곳을 배경으로 마치 전쟁은 이런 험난한 지형에서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현무암 능가하는 참담하게 파인 흔적과 시체를 묻으려 하면 다른 시체가 나오는 죽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육안으로 확인시킨다.

애록고지는 그런 전쟁이 남긴 상처를 대변하는 장치다. 그동안 많은 전쟁영화에서 사람이 이 짐을 짊어졌는데, ‘고지전’은 초토화가 된 산등성이 하나를 담담하게 시선 처리하면서 끔찍한 살상의 위력과 씁쓸한 감정을 동시에 담는다. 아마도 공중에 매달린 카메라가 밑에서 위를 치고 올라가는 돌격과 개미떼처럼 군인들이 산을 기어오르며 적을 섬멸하는 과정을 흡수해 현장감을 전하며 몇 분이나마 체험을 할 수 있던 기분 때문에 더욱 마음을 울렸으리라.

미군의 폭격으로 살이 깎이는 순간에도 국군 총알보다 많은 중공군이 넘어와 무식하게 밟는 상황에도 산은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피부가 벗겨나가면서 결국 살점이 드러나는 안타까운 형국. 애록고지는 그때 이후로 바뀌지 않은 현재의 대한민국이며, 아직까지 메워지지 않은 남북한의 갈등 구멍이 아닐까 싶다.

◆전쟁에 대한 진지한 고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전쟁을 외국인들과 다르게 느끼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언제 전쟁이 터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휴전국가에서 살고 있다. 자연재해로 죽은 사람보다 전쟁으로 죽은 사상자 수가 더 많을 정도로 지구상에선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고, 6·25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참전한 불명예로운 기록도 갖고 있다.

전쟁, 과연 누가 무엇을 위한 싸움일까. 나중엔 인간끼리 싸우는 게 아니라, 전쟁과 싸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단 시작하면 한쪽이 전멸해야 끝나는 지독한 싸움이 전쟁이다. 나이순으로 그렇다고 들어오는 순서대로 죽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또는 부하를 살려 보내야 하는 의무를 띠고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봐도 감정을 버린 냉정함을 유지하며, 정 따위는 연연하지 않고 적을 가차없이 사살하는 영혼 없는 껍데기(인간 병기)가 되는 징그럽게 소름 돋는 곳이다.

사람 냄새 나지 않는 전쟁터에서 ‘고지전’ 주인공 모두는 역사의 피해자로 나온다. 참전군 중 단 한 명도 승리에 포효하지 못한다. 그로서 그가 제안하는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자연스럽게 답을 얻는다.

불과 7개월 전,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졌다. 한반도는 잠시나마 끔찍한 역사가 되풀이될까 몸을 떨었다. 그건 전쟁 시작의 두려움이 아닌 끝을 모를 막막한 출발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영화 속 김수혁 중위는 ‘이곳보다 더 지옥이 없어서 여기에서 사는 게 아닐까’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전쟁이 끝난 후 악몽에 시달리고 현재에 적응 못하는 비애보다, 전장에서 야만스러운 상황을 모두 겪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어서 그런지 순간적으로 전쟁이란 어둠이 밀려오는 무언가란 느낌을 받았다.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깊고 깊은 암흑 속 말이다.

온 세상이 싸우라고 소리치는데 고요하게 그들을 싸우지 말라 다독이는 안개처럼, 갑과 을이 싸우는 전쟁의 종료가 아닌 전쟁 그 자체가 사라졌다는 계시가 간절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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