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조 전 위원장

 

결핵은 결핵균이 일으키는 흔하고 위험한 법정 감염병이다. 대부분 폐에서 발생하지만 신장, 신경, 뼈 등 대부분의 조직이나 장기에서 병을 일으킬 수 있다. 결핵균은 주로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 전염성 결핵환자가 대화, 기침 또는 재채기를 할 때 나온 결핵균을 주위 사람들이 들이마심으로써 전염되는 것이다. 결핵에 감염됐다고 해서 모두 결핵환자는 아니다. 감염자 중 90%는 잠복결핵 상태를 유지하면서 면역기전에 의해서 억제돼 증상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결핵균을 전파하지도 않는다. 100명이 결핵균에 감염되더라도 90명은 평생 건강하게 살고 5명은 1∼2년 안에 발병하며 나머지 5명은 나중에 면역력이 저하되면 언제든지 발병할 수 있다고 한다.

대형마트 문화센터에서 영유아를 가르치는 강사가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뉴스를 통해 들었다. 강사가 최근에 일했던 문화센터는 8곳이나 돼 100명이 넘는 영유아가 결핵 역학조사를 받아야 하고 부모들까지 더하면 조사 대상자는 2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얼마 전 전국 보건소 196곳 중에서 영상의학 전문의들이 없는 117곳에선 공중보건의가 결핵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데 연간 1000건 이상의 결핵 오진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의료기관과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사람 10명 중에서 2명이 잠복 결핵의 양성감염자라는 사실도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졌다.

결핵공화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충격적인 소식들이다. 2015년 현재 한국의 10만 명당 결핵발생률은 80명, 결핵사망률은 5.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평균 결핵발생률 11.4명, 사망률 1.0명) 가운데 단연 1위다. 해마다 400억 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해 결핵퇴치사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부터 작년까지 10년간 35만 4150명의 결핵환자가 발생했고 매년 새로 발생하는 결핵환자 수가 3만 명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2016년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4300여 명인데 비해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가 2200여 명이라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결핵은 대표적인 후진국병이라고 일컬어진다. 환자 대부분이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후진국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결핵은 규칙적으로 꾸준히 결핵약을 먹으면 대부분 완치할 수 있는데도 세계적으로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지속적인 치료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 때문이다. 결핵에 감염됐다고 하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환자 자신이 그것을 숨기고 일하는 경우도 많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약제에 내성이 생겨 치료를 더욱 어렵게 하기도 한다. 그 결과 주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계속해서 병을 옮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결핵은 1950년대만 하더라도 사망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했지만 보건의료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경제적 발전으로 말미암아 환자 수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그렇지만 세계 11위 수준의 경제 규모를 갖고 있는 나라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을 정도로 결핵발생률은 좀처럼 줄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 국민 3명 중에 1명은 잠복결핵에 감염됐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노동환경이나 노동강도는 후진국 수준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대학 시절 결핵의 심각성에 주목해 결핵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고 공연하기도 했다. 4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결핵에 관한 소식은 크게 나아지지 않아서 답답하다. 정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작년 3월 결핵발생률을 2022년까지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목표를 세웠다고 하던데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않다. 결핵환자를 격리병상에 입원시키면 그에 따른 격리병실 비용의 절반 정도만 지원하고 N95마스크(감염 차단하는 의료용 마스크), 음압시설 등의 지원은 일체 없다고 병원들은 불만이고 잠복결핵 검사 후 치료 가이드라인도 없다고 관련 학회에서는 비판하고 있는 걸 봐도 그렇다. 메르스나 조류독감에 갖는 관심 이상으로 결핵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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