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속 일터

금강일보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효와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임석원의 자전적 에세이 ‘나는 내 아내가 너무 좋다’를 온라인판을 통해 연재합니다. ☞본보 2017년 8월 9일자 10면 보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세대로, 임석원의 에세이는 그 시대에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 가지도 해 보지 못한 채 오직 가족만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한 남자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곁에서 묵묵히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준 아내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을 전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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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속 일터

지사에서 6개월 동안 맡은 일에 익숙해지고 일을 잘 하고 있자 하일 현장 전 과장이 나를 현장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본사-지사-현장 간 협의를 거쳐 나는 10월 하일 현장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하일은 수도 리야드로부터 북쪽으로 800여㎞ 거리에 있는 도시인데 그 도시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한 상수도 공사를 우리 회사에서 수주해 하고 있었다. 지하수가 흐르는 상수원이 네푸드 사막 접경 도시 하일로부터 사막 속으로 25㎞ 정도 들어가서 땅 속 900~1000m 사이의 깊은 곳에 있었다. 공사 내용은 사막 속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장 시설 공사와 하일까지 물을 보내기 위한 25㎞ 파이프 관로 공사, 그리고 배수지 물탱크 공사였다. 우리는 상수원이 있는 사막 한가운데에 숙소와 사무실을 짓고 생활했다. 이른 아침 6시에 일어나 밥 먹고 7시에 일과를 시작해 잠자리에 들기까지 사막 한가운데서 일만 하는 생활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 건설 현장은 완전 상명하복의 조직체계였다. 그래서 당시 직원들은 “군대생활 3년 한 번 더 하는 거다, 돈 버는 군대생활 3년”이란 말을 하곤 했다. 우리는 그렇게 눈 뜨고 있는 시간에는 일만 하는 생활을 했다. 그렇게 일만 하는데도 워낙 환경이 좋지 않으니 현장의 공사 진척도(공정률)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특히 건기에서 우기(비가 두세 차례 오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우리나라 겨울 못지않은 추운 날씨가 되기도 한다)로 넘어가는 시기인 11월에는 모래바람이 심하게 불어 공사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계절이 바뀌는 계절풍이 부는 것이었다. 모래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온 하늘이 누런 흙가루였다. 심하게 바람이 부는 날에는 입안으로도 흙가루가 들어가는데 물로 몇 번을 헹궈도 없어지지 않았다. 눈썹에 흙이 쌓여 있고, 사무실에도 흙가루가 날렸다. 심지어 샤워하고 방에 들어가면 침대의 하얀 시트 위에도 노랗게 흙가루가 쌓여 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모래바람(Sand Storm)이라 불렀지만 사실은 흙이 온 하늘로 솟구치면서 생긴 흙바람이었다. 공사기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흙가루가 온 하늘을 덮어 앞이 보이지 않는 경우를 빼곤 어지간한 모래바람에도 공사는 계속됐다. 우리 현장의 공사 진척도가 좋지 않자 11월 어느 날, 하일 지역 왕자가 진행상황을 살피러 방문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 날은 모래바람이 엄청 심하게 불었다. 공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 일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 전체 공사구간 25㎞ 중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주요 지점마다 직원들이 나가 왕자 일행을 영접하기로 했다. 공사 현장에는 300여 명의 일꾼들이 곳곳에 배치돼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일꾼들은 사우디 사람들이 둘러쓰는 빨간색과 하얀색의 격자무늬로 된 넓은 보자기 같은 천 ‘슈마그’를 얼굴과 머리, 목까지 내려오게 쓰고 눈만 내놓고 일을 한다. 그래야 온 하늘에 황토색으로 휘날리는 모래와 흙이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날도 모래바람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었으므로 일꾼들은 슈마그를 둘러쓴 기괴한 복장을 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왕자 일행이 오는 길목마다 직원들이 어쩌면 과장된 동작으로 경례를 붙이며 “쌀람!”(‘안녕’, ‘평안’을 뜻함)이라고 크게 외쳐댔다. 왕자 일행이 현장 회의실에 도착하자 어느새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일렬로 도열하고 왕자 일행을 맞았다. 왕자와 7명의 수행원들은 우리 15명의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로 인사를 나눴다. 영어를 잘하고 해외공사 경험이 많은 공사 2팀 이 차장이 미리 준비한 현장 공사 진행 현황을 브리핑했다. 이 차장은 우리 현장의 공사 진척도가 좋지 않게 나타난 것은 어려운 구간을 먼저 시행하다 보니 수치상 그렇게 나타난 것이고 이 어려운 구간만 지나면 공정률이 만회될 것이라고 왕자 일행에게 확신을 줬다. 브리핑 후 담화 시간에 왕자는 현장의 어려운 환경과 공사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S건설과 현장팀의 노고를 크게 치하하고 격려했다. 왕자가 돌아가고 난 후 발주처인 사우디 정부 농림성에 하일 지역 왕자의 현장 방문 상황을 보고했다. 그 후로 우리 현장에 대해 우려 섞인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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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석원은...

1956년 지리산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전고와 한남대를 졸업한 후 1980년 S그룹 S건설에 입사해 23년을 근무하면서 사우디·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8년간 생활했다. 2003년 영국 유통회사 B&Q 구매이사, 2004년 경남 S건설 서울사무소장으로 일했다. 2009년 H그룹 H건설에 입사해 리비아에서 자재·장비 구매업무를, 2011년 E그룹 E건설에 입사해 중국과 동남아 대외구매를 담당했고, 2013년에는 전북 J건설 소속으로 사우디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34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미군부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분당 판교지역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인생 후반기엔 ‘책 읽고 여행하고 글 쓰는 삶’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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