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북산의 호랑이를 죽임⑥

“북산의 호랑이는 다음에 죽이기로 하고, 일단 맬싹으로 가세!”

대망새는 동굴 입구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빛을 보며 말했다. 함께 움직일 만한 사람들을 추려보니 20여 명이 됐다. 그중에는 아우인 배라기도 포함됐다. 배라기는 어느 새 훌쩍 자라 아버지 소낵의 모습을 쏙 빼닮은 늠름한 전사가 돼 있었다. 멘도루와 가랑, 모대기 등 전투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대로 쌍둥이 동굴에 남아있기로 했다.

대망새는 전사들을 이끌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동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한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마련해 주고 떠나기 위함이었다. 동생 배라기가 쫒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동굴 사람들을 지키라는 명분을 앞세워 눌러 앉혔다. 혹시 아버지 소낵을 죽인 북산의 호랑이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불같은 성격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사냥길이다.

바람이 달달하다. 대망새 일행은 계곡을 거슬러 올라 절벽 끝을 지났다. 거기부터는 평탄한 땅과 계곡의 물이 조화를 이뤄 동물들이 무시로 드나들 수 있는 좋은 사냥터였다. 대망새가 화살을 들어 나무 위에 올라앉은 닭 한 마리를 쏘아 떨어뜨렸다.

“아~! 저, 저놈이다!”

대망새는 순간 아버지를 해친 호랑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놈은 한참 동안 대망새를 응시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홱 돌려 느릿느릿 거만하게 걸어갔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대망새가 놈을 놓칠 리 없었다. 대망새는 몸을 튕겨 바위 뿌다구니를 훌쩍 넘었다. 여전히 거만한 놈의 걸음걸이가 대망새의 약을 바싹바싹 올렸다. 아버지 소낵을 죽이고 불구대천의 원한을 남겨준 놈이 도망치기는커녕 가소롭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드륵의 전사들은 대망새 옆에 바싹 붙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대망새, 저 놈인가? 저 놈이 자네 아버지를 죽인 놈이냔 말일세!”

대망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활을 들었다. 놈의 약을 올려 정면대결을 할 작정이었다.

“피융~” 화살은 정확하게 놈의 둔부를 맞혔다. 그러자 놈이 움찔하며 대망새를 돌아봤다. 놈의 눈동자에 살기가 어렸다. 전사들은 공포에 질려 슬금슬금 도망을 쳤다. 대망새가 오른손에 도끼를 움켜쥐고 서릿발 같은 눈빛으로 놈의 눈을 노려봤다. 대망새가 놈의 눈에서 살기를 거두는 순간, 놈은 바위 꼭대기까지도 날아오를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리기도 창을 잡고 공격 자세를 취했다.

대망새와 쟁연한 눈싸움을 벌이던 놈이 갑자기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호랑이가 도망을 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놈은 도망치는 척 숨어 있다가 번개처럼 기습을 할 생각이었다.

대망새와 소리기는 맹렬하게 달려 놈을 쫒기 시작했다. 놈의 몸이 먹구름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태양처럼 검은 숲으로 사라져버렸다. 대망새는 평평하고 커다란 바위가 하늘로 솟구쳐 있는 곳에 멈추어 섰다.

‘아버지도 이와 비슷한 곳에서 놈의 공격을 받았다.’ 대망새는 소낵의 죽음을 상기하며 바위와 가능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위 위를 응시했다. 대망새의 예감은 정확했다. 놈이 바위에 납작 엎드려 기습을 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위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 하마터면 바위의 일부로 착각할 정도였다. 과연 소낵을 죽인 산중의 왕답게 영악한 놈이었다. 대망새는 숨어있는 놈의 눈을 예리하게 쏘아봤다. 작전에 실패한 놈이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앞발로 바위를 벅벅 긁어댔다. 뜻대로 되지 않자 화가 난 것이다. 놈이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대망새를 향해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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