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없이는 고용률과 국민들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국회에 계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을 촉구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그중 이데일리의 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의 하나가 과로사회다. OECD 최장 노동시간 속에서 집배원 과로사와 자살, 또 화물자동차 및 고속버스의 대형 교통사고 등 과로사회가 빚어낸 참사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과 과로를 당연시하는 사회가 더 이상 계속되어선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연평균 노동시간이 길다. 지난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76시간을 크게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기에 문 대통령도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세계적으로 고용률이 70%를 넘는 국가 중에 연간 노동시간이 1800시간이 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다. 그런데 여기에 연장근로 12시간과 휴일근로시간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적용하면 주당 최장 68시간(법정근로 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 토·일 각각 8시간) 근로가 가능한 상황이 된다. 상황이 이러니 당연히 연평균 노동시간이 1800시간을 훌쩍 넘는 것이다. 그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2010년 노사정위원회가 합의한 1800시간대의 노동시간 실현을 약속했던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주당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을 단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여야 정치권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사회적 명분으로 인해 주당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데는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이다. 다만 시행시기와 추가 연장근로 허용 여부 등을 놓고 여야 간, 노사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관련 상임위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겠다고 하니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문재인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이 사회복지시설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노숙인 복지시설은 노동시간 단축이 아닌 거꾸로 노동시간이 늘어나야할 판이다. 이번 보건복지부의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이 그렇다. 복지부의 개정안 제안사유를 보면 노숙인 이용시설 및 생활시설 입소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고, 종사자의 근무환경을 제고하기 위하여 종사자 배치기준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이용자 또는 입소자가 30명 이상의 시설에 기존의 1명이었던 생활지도원을 2명으로 하고, 기존의 50명 이상 시설에서 50명당 1명이었던 생활지도원을 25명당 1명으로 추가배치하겠다고 한다. 또한 이용자 또는 입소자 10명 이상의 시설에 기존의 1명이었던 조리원을 2명으로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복지부의 주장대로 50명당 1명이 아닌 25명당 생활지도원이 1명으로 늘어나고, 조리원이 2명으로 늘어나기에 서비스의 질이나 근무환경이 나아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이번 개정안이 이용자 또는 입소자가 30명 이상인 시설에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노숙인 자활시설의 경우 대부분이 30인 미만 시설들이다. 이 시설들의 인력기준을 보면 시설장을 포함하여 모두 4명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자활시설들이 시설장과 조리원을 포함하여 야간 당직을 돌아가면서 감당하거나 어떤 경우는 아예 시설장이 생활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야간 당직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관련단체에서는 자활시설에 야간 당직자를 배치해 줄 것을 꾸준히 요청했었다. 그런데 불구하고 가장 시급하게 종사자 추가배치가 필요한 30인 미만 시설은 제외하고 30인 이상 시설에만 적용하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현재 30인 미만 시설들은 인력의 한계로 인해 자활을 위한 그 어떤 체계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저 단순 보호에 그치고 있다. 그러므로 복지부의 주장대로 노숙인의 자활과 서비스를 향상시키고 종사자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려면 30인 미만 시설에도 기본적인 인력 증원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문재인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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