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분담 하자며 세대 갈등 부추긴 정부

정년연장법, 임금피크제, 청년고용할당제.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를 통해 박근혜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을 목표로 추진한 정책들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가 심화하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노동시장의 질서를 재편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나라에서 노동개혁 문제는 ‘정치화’ 돼버렸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 대결로 비화되기도 했다. 한 쪽의 권리를 빼앗아 다른 쪽을 돕는다는 발상은 당장의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순 있지만 더 큰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 노동시장 개혁이 세대 간의 문제를 떠나 우리 경제 전반에 드리워진 저성장과 불평등의 원인을 개선해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한 시장 경제를 만드는 호기(好期)가 돼야만 하는 이유다. 편집자

<글 싣는 순서>
1. 세대 갈등으로 번진 노동시장 개혁
2. 노후준비도 못 한 갈 길 잃은 부모
3. 존재감 상실…패배 수렁에 빠진 청춘
4. 베이비부머와 에코세대 공존의 해법
 

“젊은 세대를 위한 나라는 없다. 정부가 전 세대에 공정하게 혜택을 부여하지 않으면 젊은 층은 세대 간 사회계약의 파기를 원할 수도 있다.”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즈(FT)는 2015년 2월 발행한 지면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청년 실업문제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고민이 아님을 짐작게 한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겠다고 일성하며 출범했던 지난 정부는 전 세대에 공정한 혜택을 부여하는 대신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했다. 이마저도 제대로 된 추진은 해보지도 못한 채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과 함께 흐지부지돼버렸다.

노동시장 개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화된 구조적 양극화, 소득 불평등이라는 고질적 병폐를 청산하기 위한 과제이자 우리 경제 체질 개선의 선결조건이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이 문제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했다. 당시 정부는 직장인의 정년을 60세로 늘리는 정년연장법과 맞물려 정년은 보장하되 임금은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했고 이에 따라 제도시행과 동시에 난관에 부딪혔다. 

임금피크제가 부모 세대에겐 정년을 보장하는 동시에 청년들에겐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찬성론과 제도 자체가 청년 고용이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기업의 배만 불릴 것이라는 반대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정년연장법과 연계해 추진되던 임금피크제는 마치 세대의 문제인 것처럼 비쳤다. 뜬금없이 세대 담론이 등장해 노동시장 개혁의 초점이 청년 일자리와 연계한 세대 간 문제로 정치화된 거다. 대통령도 전면에 나서 이를 더욱 부추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노동개혁은 청년의 생존이 걸린 일인데 좌초된다면 역사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기성세대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며 노동시장의 문제가 마치 통 큰 양보없는 기성세대와 청년 간의 세대 갈등에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노동자와 기업이 공동의 노력과 대화를 통해 풀어가야 할 문제를 성과에만 급급한 정부가 정치적으로 접근한 거다.

노동개혁 문제를 결코 세대 담론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사실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청년 실업과 일자리 부족이 우리 경제에 심각한 문제인 건 틀림없지만 자칫 이를 세대 간의 문제로 초점이 맞춰질 경우 노동시장 개혁의 본질을 왜곡할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저성장의 고착화, 고용 없는 성장 등의 문제와 함께 성장-분배-소비-일자리 확대라는 자본주의 경제의 선순환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청년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신음서제’, ‘흙수저 대 금수저’ 등의 한탄은 경제의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내의 경제적 구조 문제를 지적한 것이지 그게 결코 세대의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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