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코앞인데…부모 봉양·자식 부양 한숨

정년연장법, 임금피크제, 청년고용할당제.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를 통해 박근혜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을 목표로 추진한 정책들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가 심화하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노동시장의 질서를 재편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나라에서 노동개혁 문제는 ‘정치화’ 돼버렸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 대결로 비화되기도 했다. 한 쪽의 권리를 빼앗아 다른 쪽을 돕는다는 발상은 당장의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순 있지만 더 큰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 노동시장 개혁이 세대 간의 문제를 떠나 우리 경제 전반에 드리워진 저성장과 불평등의 원인을 개선해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한 시장 경제를 만드는 호기(好期)가 돼야만 하는 이유다. 편집자

<글 싣는 순서>
1. 세대 갈등으로 번진 노동시장 개혁<11월 6일자 기사보기>
2. 노후준비도 못 한 갈 길 잃은 부모
3. 존재감 상실…패배 수렁에 빠진 청춘
4. 베이비부머와 에코세대 공존의 해법
 

베이비부머(Babyboomers)는 지난 반 세기 동안 한국사회에 불어닥친 산업화와 민주화 태풍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가파른 질곡을 마주하며 그간 우리 경제를 떠받쳐온 주역도 바로 이들이다. 정년을 앞두고 경제 성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그 자식세대들에게 물려줘야 할 날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베이비부머들은 홀가분하기보단 미래 걱정에 노심초사(勞心焦思)다. 그동안 노후에 대한 준비를 미루고 위로는 부모를 봉양하면서 아래론 자식부양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온 탓이다.

가족 건사를 위해 평생 직장에서 일만 해왔던 베이비부머들에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대내외적 경제 환경 속에서 은퇴는 가혹한 운명과도 같다. 이미 1955~1963년생 베이비부머들은 2015년을 기점으로 경제사회에서 은퇴하기 시작했다. 그 수만 해도 통계청 기준으로 무려 733만 명에 달한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경제구조에서 허리를 지탱하는 이들의 자식들인 2차 베이비부머(1968~1974년생) 세대도 곧 은퇴를 고민할 때가 왔다.

그러나 이들이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경제 구조상 가장 높은 고용률을 자랑하며 시장에서도 큰 영향력을 구가해왔지만 이들앞엔 고착화된 경제 저성장의 늪, 구조조정의 찬바람이 놓여 있다. 제자리만 맴도는 소득,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특히 20년 전이 그랬다. 고도성장의 황금기는 잠깐이었고 이들은 한창일 40대 나이에 외환위기라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았다. 자식은 아직 어리고 들어갈 교육비는 만만치 않을 때 경제 체질 개선을 이유로 이들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라는 매서운 칼바람에 휩싸였고 특히 사오정(45세 정년)으로 불린 조기퇴직자들은 한순간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그럼에도 이들은 비정규직, 단순노동직에 종사하며 겨우겨우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던졌지만 세상은 그 사이 바뀌어 있었다. 사회로 진입하지 못한 청년들이 늘면서 나이가 들어도 자식을 오히려 부양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자식 뒷바라지의 끝이 보이지 않는 거다. 베이비부머는 그렇게 자신의 부모를 부양한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됐다.

젊어선 부모 봉양에, 늙어선 자식 뒷바라지에 정작 자신의 노후조차 챙길 겨를이 없었던 베이비부머들은 그렇게 사회에서 천천히 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낯설은 노후와 막막한 앞날에 한숨만 쉬고 있다. 이미 사회를 떠난 이도, 앞으로 떠나야하는 이도 답답한 미래에 걱정이 앞선다. 아직 자식들의 교육을 채 마치지 못해 걱정이 크다는 곽 모 씨는 “요즘 세상에 누가 50대 후반을 노인으로 보겠나. 환갑도 없어진 마당에 은퇴는 코앞이고 자식들은 아직 대학 졸업도 못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은퇴 이후를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장과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속에 지금과 같은 사회 구조론 다음 세대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베이비부머의 성공적인 은퇴를 위한 길을 마련해 주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앞 세대가 실패하면 다음 세대는 서보지도 못하고 무너진다는 생각에서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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