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금요극장] 품위를 지키는 '우먼 인 골드'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는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그린 상류층 여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화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금빛으로 강렬하고 아름답게 여성의 매력을 표현한 이 그림은 2000년대에 1억3천500만달러(1천500억원)에 거래된 바 있다.

이런 작품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와 같이 화가와 모델의 이야기를 다룬 시대극을 상상하기 쉽지만, 영화 '우먼 인 골드'(감독 사이먼 커티스)는 전혀 다르게 이 그림을 둘러싼 현대의 반환 소송을 다룬다.

1998년 미국, 유대인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은 숨진 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에 걸려 있는 초상화를 비롯한 클림트 작품 5점을 되찾고자 했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 한 장을 발견한다.

마리아 알트만은 그림의 모델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조카다. 자식이 없어 마리아를 딸처럼 아끼던 큰아버지 부부를 비롯한 가족은 저택에 수많은 예술품을 두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으나 전쟁 중 나치에 모든 것을 빼앗겼다.

알트만은 역시 오스트리아 이민자 가정의 아들인 젊은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에게 그림을 되찾을 방법을 묻는다. 알트만과 쇤베르크는 클림트의 그림들이 오스트리아의 유산이라고 믿는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8년에 걸친 싸움을 시작한다.

영화는 이들이 좀처럼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을 하나씩 뛰어넘어 정의를 실현하려 애쓰는 여정을 그려 나간다. 특별하거나 기발하지 않지만 성실하고 우아하다.

실화를 바탕에 둔 만큼 주인공들이 위기에 몰렸다가 헤쳐나가고 갈등의 골에 빠졌다가 벗어나는 모습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예상 가능한 만큼의 감동을 준다.

그보다는 관객의 시선을 더 끌어당기는 부분은 마리아 알트만이 때때로 빠져드는 회상 속의 과거 장면들이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기 전후로 예술의 향기로 가득 찬 블로흐 저택의 모습, 이곳이 군화에 짓밟히는 모습들은 현대의 소송전을 그린 장면들과 섞이면서 관객이 주인공들에게 공감할 여지를 넓혀준다.

이 영화의 호소력은 무엇보다 배우들에게서 나온다.

특히 '품위'란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헬렌 미렌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힘이 가장 크다. 그는 기나긴 고난의 세월을 살아내고도 인생의 끄트머리에 유머감각을 발휘할 수 있는 노년의 여성을 완벽하게 그려낸다.

라이언 레이놀즈 역시 개업 실패로 빚에 쪼들린 미국의 청년 변호사가 순수한 열정을 되찾아 나가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EBS1 에서는 11일 0시 25분부터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방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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