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석 수필가

얼마 전이다. 아침 신문에 통념을 뛰어넘는 기사가 실렸다. 대전시가 ‘10월 정례 확대간부회의’를 유성시내 두드림 공연장 야외무대에서 열었다는 것이다. 훌륭한 회의실 제쳐두고 왜 굳이 유성온천공원 족욕장의 야외 공연장을 선택했을까? 회의 참석자들은 본청 실·국장 및 산하기관장, 각 구 부구청장 등 고위직급 120여 명이다. 그 중 자전거를 타기 어려운 사람들 50여 명은 버스를 타고 회의장으로 직접 오도록 하고, 시장(市長)을 선두로 한 70여 명은 시가 운영하는 공영자전거 ‘타슈’를 타고 단체 대열로 시위하듯 시내 일정 구간을 돌아 회의장으로 합류했다는 것이다.

회의 장소 결정의 배경은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만끽해 보려는 단순한 기획이 아니었다. 이면의 목적은 염불보다 잿밥이었다. 회의 명분으로 동원된 고위공직자들의 ‘타슈’ 단체 대열은 도중에 미리 설치된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 모형의 구조물 밑을 통과하는 이벤트가 핵심이었다. 즉 ‘트램’ 방식 도시철도 건설의 홍보 효과를 높이겠다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역류했다. 이날 정례 확대간부회의에서 다뤄진 주요 안건도 ‘대중교통 활성화 방안’이었다는데, 이는 도시철도 2호선 건설 방식을 ‘트램’으로 결정한 시장의 의지에 대해 합리화 및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한 ‘쇼’같은 행사였다는 게 이구동성의 귀띔이다.

대전시가 도시철도 2호선을 노면(路面, 트램·Tram)식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하(地下) 방식 또는 고가(高架) 방식 등 엇갈린 주장들을 놓고 지금까지도 시민들의 의견이 상치되고 있다. 7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2호선 건설을 ‘트램’ 방식으로 밀어붙이려는 시장의 입장에선 계산된 행사다. 회의를 명분 삼아 고위공직자들을 유성온천 야외공연장까지 동원시킨 것도, 또 집단대열로 자전거 타고 시가지를 돌아 ‘트램’ 모형의 구조물을 통과하도록 연출한 이벤트도 모두가 ‘트램’ 방식에 비중을 둔 시장의 의지가 작용했음이 다분하다. 정작 도시철도 2호선은 아직까지 착공 시기조차 기약이 없다,

이날 확대간부회의장에서 논의된 대중교통 활성화 방안이나 친환경 교통수단 활성화 방안들은 모두 ‘트램’ 방식이 결정되면서 이미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사안들이다. 정작 논의했어야 할 시급한 회의 주제는 착공 시기조차도 막연한 2호선을 어떻게 하면 빨리 착공할 수 있겠는가, 또한 시범 구간 건설 약속만이라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으로, 이에 대해 지혜를 도출하는 논의가 우선됐어야 한다. 차라리 확대간부회의 명분보다는 대중교통문화를 자전거로 유도하는 구실을 붙였다면 시민들의 인식은 달랐을 것이다. 회의를 구실로 고위공직자들을 ‘트램’ 홍보에 동원해 연출한 것은 시민들의 의식수준을 얕잡아 본 행태다.

지방선거가 7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도시철도를 또다시 들먹이려는 선거전략은 이제 시민들의 반감만 부추기게 된다. 안 그래도 시민들은 현 시장의 일거수일투족, 일언반구도 무심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당수 시민들의 인식 속에 새겨진 대전 시정의 현실은 지지부진(遲遲不進),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시장 개인적으로 사법부의 법무적 판단을 받아야 할 불안한 사정은 있다. 그러나 시정(市政)과 연계시킬 사안은 아니다. 시장은 시민의 대표자다. 선거 때 공약을 했으면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또 지키지 못한다면 공약할 때처럼 시민들에게 이유를 알려야 솔직함이라도 인정받는다.

인접한 세종시 출범 이후 대전 시정은 매년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시장은 권세가 막강한 여당 출신이다. 행정적으로 불가능하면 정치적 대책이라도 동원해야 할 때다. 필요한 시기마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만 외쳐댔을 뿐 무엇 하나 시민들에게 체감될 만큼 발전된 게 없다. 시민들은 ‘행복하고 살맛나는’ 대전 발전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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