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소리들이 있다. 복음(福音)도 있고 잡음(雜音)도 있으며 소음(騷音)도 있다. 귀한 소리는 ‘Voice’라 하고 천한 소리는 ‘Noise’라 할 수 있다. 예수님도 귀한 대화와 설교를 하면서 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다.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들어도 모르는 자가 있다는 전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같은 교수의 강의를 들어도, 같은 목사의 설교를 들어도 이해와 반응은 제각각 다르다. “소극적”, “적극적”이란 설교를 듣고 “소꼭지”, “젖꼭지”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다니 말이다.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은 발신자가 속뜻을 언어(말 혹은 글)로 표현할 때 한 번 굴절(변질)이 생기고 다시 수신자가 그 언어(말 혹은 글)를 자기 속뜻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굴절이 생기기에 발신자의 속뜻이 수신자의 속뜻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오해와 왜곡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더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①五道이야기: 아무리 유식한 이야기를 해도 경상도 사람들 이야기는 무식하게 들리고 아무리 점잖은 이야기를 해도 전라도 사람들 이야기는 천박하게 들리고, 아무리 똑똑한 이야기를 해도 충청도 사람들 이야기는 멍청하게 들리고 아무리 세련된 이야기를 해도 강원도 사람들 이야기는 촌스럽게 들리고 아무리 거짓된 이야기를 해도 경기도 사람들 이야기는 그럴 듯하게 들린다. 실제로 이렇게 지역 편견이 있는 것인가? ②민들레꽃: 어느 먼 산골에서 한 점 씨앗으로 바람에 날려 와 이 낯설고 삭막한 도시 위에 저렇게 외롭고 힘겹게 뿌리를 내렸을까? 집 앞 골목길을 나서다 우연히 보도블록 틈새에서 발견한 한 포기 민들레꽃. 너무도 내 모습을 꼭 빼어 닮아 마음이 시리다. 외딴 곳에 던져진 존재로서의 저 민들레꽃 한 송이. ③책: 내용이 좋은 책은 많이 팔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도 잘 모르겠다. 왜일까?

④우정의 한계: 지금 당신 주위에 최근 10년 동안 그 우정이 변함없는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가? 친구란 많이 있기가 어렵다. 적은 수로 깊이 사귀는 게 좋다. 당장 친구들의 주소나 모바일 전화번호를 찾아서 돈 1000만 원만 빌려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가 점검해 보자. 명심보감에는 “서로 술이나 음식을 함께할 친구는 많으나 급하고 어려운 때 도와줄 친구는 하나도 없다.”(酒食兄弟千個有, 急難之朋一個無)는 말이 있고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이 맑으나 소인의 사귐은 식혜같이 달다.”(君子之交淡如水, 小人之交甘如醴)라고 했다. ⑤무왕(BC 169-BC 116)이 말하는 10가지 도둑(十盜)은 곡식이 익은 것을 제때에 거둬들이지 않는 것/거둔 후 쌓는 것을 마치지 않는 것/일 없이 등불을 켜 놓고 잠자는 것/게을러서 밭을 갈지 않는 것/공들여 일하지 않고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교활하여 해로운 일만 행하는 것/딸을 너무 많이 기르는 것/낮잠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술을 탐하고 환락을 즐기는 것/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라 하였다. ⑥강태공은 낭비하지 않아도 부유하지 못하는 이유를 1착(錯), 2오(誤), 3치(痴), 4실(失), 5역(逆), 6불상(不祥), 7노(奴), 8천(賤), 9우(愚), 10강(强)으로 들었다. 그 내용은 아들을 기르며 대하지 않는 것.(一錯), 어린 아이를 훈계하지 않는 것.(二誤), 아내를 맞이하여 엄격하게 가르치지 않는 것.(三痴), 말하기 전에 웃기부터 하는 것.(四失), 부모님을 봉양하지 않는 것.(五逆), 밤에 알몸으로 일어나는 것.(六不祥), 남의 활 당기기를 좋아하는 것.(七奴),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것.(八賤), 남의 술을 얻어 마시며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것.(九愚), 남의 밥을 빌어먹으면서 벗에게 뻔뻔하게 주는 것.(十强)이다.

⑦위선자: 위선자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과 같다. 그는 기껏해야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위선자는 입구가 뜨거워질수록 바닥이 차가워지는 시칠리아 활화산과 같다. 위선자의 입에 침이 튀길 때일수록 그의 말은 더 딱딱해진다. 위선자는 태양으로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도시 광장에 있는 시계로 시간을 잰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은 대부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뿐이다. 그는 대중의 여론(Vox Populi)을 마치 하나님의 목소리(Vox Dei)로 착각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리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대중의 지지도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그런데 그 민중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참몰시키기도 한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환영합니다”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며칠 후엔 “십자가에 못 박에 죽이소서. 그 책임은 우리가 지겠나이다”라고 외치는 게 군중이다. 우중정치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잔선교회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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