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형 청운대 교수

 

“모든 구혼자들의 모욕적인 언사와 주먹다짐은 내가 몸소 그대를 위해 막아주겠소. 구혼자들이여! 그대들은 싸움이나 말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욕설과 주먹다짐을 삼가시오. 그대들의 못된 짓들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겠어요.”(‘오디세이아’ 20권 263행 이하) 텔레마코스가 나그네로 변하여 돌아온 아버지 오디세우스에게 하는 위로와 오만불손한 구혼자들을 꾸짖는 말이다. 집에는 잔치를 벌인 듯 재산을 축내며 떠들썩하게 노는 구혼자들로 가득한 때였다. 그는 구혼자들이 하는 못된 짓을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이렇게 말하자 구혼자들은 모두 입술을 깨물었다. 텔레마코스의 대담무쌍한 말에 모두 어안이 벙벙해진 것이다. 아버지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여행을 가기 전 텔레마코스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구혼자들에 의해 살림이 결딴나는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였다. 자기 집에서 참을 수 없는 일들이 자행되어 불미스럽게 집안이 망해가고 있는데도 그것을 바라봐야만 했다. 파멸을 막아낼 만큼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텔레마코스는 분을 삭이지 못해 큰소리를 쳤지만 마음에 고통을 당하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텔레마코스가 여행을 하면서 처음 닥친 과제는 네스토르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군가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을 찾아야 했다. 정의와 지혜가 현명하다고 알려진 네스토르는 텔레마코스를 만났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텔레마코스와 같은 젊은이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하며 칭찬해 마지않았다. 텔레마코스가 도리에 맞게 자신이 누구인지 왜 찾아왔는지 밝혔기 때문이다.

텔레마코스는 메넬라오스를 만났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알고 있었다.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하였고 가까운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예측했던 것이다. 메넬라오스는 텔레마코스를 자신의 궁전에 오래 머무르기를 종용했지만 오래 머무르지 않고 서둘러 귀향했다. 자기 고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또 메넬라오스가 주는 여러 선물도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하였다. 선물 보다 메넬라오스의 마음을 받은 것에 만족했다.

텔레마코스가 돌아왔을 때 그의 여행은 결코 헛되거나 무익하지 않았다. 옳고 그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간할 수 있게 되었고 도리에 맞는 것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파렴치한 구혼자들에게 휘둘려 아무 것도 못하던 과거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용기를 갖고 스스로 할 일을 찾아 나서자 마음속에 기개(氣槪)가 자라기 시작했다.

텔레마코스 여행 기간은 오디세우스 여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았다. 오디세우스 여행은 어려움과 위험으로 가득했지만 텔레마코스는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았다. 그의 여행은 가야할 곳을 찾지 못해 이곳저곳을 떠도는 여행이 아니라 방문해야 할 곳이 정해져 있었고 함께하는 동료도 많았다. 따라서 오디세우스 여행이 고통 그 자체였다면 텔레마코스 여행은 순탄하기 그지없었다. 두 사람이 겪은 여행 성격이 다르다 해도 여행에서 얻은 것은 다르지 않았다. 여행을 통해서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날 여행은 그 패턴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지고 있다. 잘 알려진 관광지를 방문하거나 생소한 곳을 방문하는 여행자가 있다. 편안하고 안전한 곳을 여행하는 반면 오지(奧地)나 극지(極地)를 찾아 고생을 서슴지 않은 여행자가 있다. 여러 곳을 방문하는 여행자가 있는 반면 한 곳에 머무르는 여행자도 있다. 신기한 체험을 하거나 풍경을 관람 하거나 휴양을 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찾아 여행을 한다. 하지만 그 지향점은 같다.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자신을 잘 이해하면 할수록 세상을 잘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세상을 잘 바라보게 된다면 자신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여행에서 얻는 큰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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