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의집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한 지도 20년째로 접어든다. 지난 19년 동안 흔들림 없이 한 길을 가고자 애쓰긴 했지만 돌아보면 부족한 것도 아쉬운 것도 많은 것 같다. 그럼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19년을 함께 동행해준 모든 동지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올해 벧엘의집 후원행사는 ‘함께 걷는 희망디딤’이라고 정했다. 그것은 그동안 동행해 준 많은 동지들의 마음이 디딤돌이 돼 다시 희망을 노래하기 위해서이다.

벧엘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지명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셨다. 하나님의 집이란 뜻을 가진 히브리말로 야곱이 형에게서 축복을 교묘한 속임수로 가로채고는 형의 보복이 두려워 밤이슬을 맞아가며 도망가던 중 하나님을 만난 곳이다. 아마도 야곱이 속임수를 써가며 형의 축복을 가로챈 것은 밤이슬을 맞아가며 돌베개를 베고 자야 하는 노숙자로 살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아버지와 형을 속여가면서까지 얻으려고 했던 것은 행복한 삶, 풍요로운 삶이었다.

그러나 야곱이 형의 축복을 훔친 다음부터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행복의 시작이 아닌 고난의 연속이 된 것이다.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아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도리어 고향에서조차 살 수 없어 도망쳐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고, 추위와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거처도 없이 떠돌이 신세로 전락한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가면서 까지 형의 축복을 가로챈 것을 아마도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둘째로 태어난 것에 순응하며 살았으면 지금과 같은 고난은 없었을 것이라고 자신의 과거를 원망하기도 했을 것이다.

들판에서 추위와 허기,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며 이슬 잠을 자야했던 야곱, 미래의 희망을 꿈꾸는 것 자체가 사치가 되어버린 신세,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야만 했던 그에게 벧엘은 하나님을 만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 곳이다. 그러기에 야곱에게 벧엘은 인생의 전환점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 터닝 포인트와 같은 곳이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 생의 전환기를 맞은 곳, 절망과 좌절을 딛고 희망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곳이 바로 벧엘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사회에도 야곱과 같이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지금은 몸은 상하고, 가족은 흩어지고, 이 사회에서는 낙오자로 낙인찍히고, 주머니는 텅 비어 자신의 몸 하나 둘 곳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동정보다는 비난의 대상인 노숙인들이다. 우리사회에서 노숙인은 경제적인 가난을 넘어 인생의 낙오자, 건전한 사회를 해치는 범죄자, 남의 등이나 치는 양아치로 취급당하며 어느 누구에도 환영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시민사회, 사회복지, 종교 등 그 어느 곳에도 노숙인의 자리는 없다. 그렇게 노숙인은 이곳에서 떠밀리고, 저곳에서 비난받으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외로운 섬처럼 사회 한복판에서 고립된 채 외롭게 살아간다. 노숙인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조차 해서는 안 되는 그 사회의 그림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자신이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조차도 생각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벧엘의집은 동정의 대상이기보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 버린 우리의 이웃들이 노숙자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것처럼 자신의 삶을 가다듬어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 가는 곳이 되고자 시작되었다. 절망과 분노로 가득했던 삶을 희망과 용서로 바꾸는 곳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길을 모색하고자 19년 동안 한 길을 달려온 것이다. 그러기에 혼자가 아닌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꿈꿨으며, 경쟁이 아닌, 같이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것이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벧엘의집이 그들과 함께 희망가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앞에서, 옆에서 거들고 함께 해준 수많은 동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께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 다시 한 번 ‘함께 걷는 희망디딤’으로 우리의 희망을 노래하자.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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