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많은데…난 행복하다”

▲15일 대전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권선택 전 시장(앞줄 가운데) 이임식 후 권 전 시장이 시의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 일 기자

겨울의 문턱, 돌연 기온이 급강하하며 적막하고 쓸쓸한 기운이 대전시청 주변을 감돈 건 그의 갑작스럽고도 충격적인 퇴장 때문일까?

대법원의 당선무효형 선고 24시간 만인 15일 오전 10시 대전시청 대강당에서, 예정된 임기보다 무려 7개월이나 앞당겨진 ‘생뚱맞은’ 이임식의 주인공이 된 권선택 전 시장의 작별 인사에는 여러 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었다. 하루아침에 한 떨기 낙엽처럼 시청을 떠난 권 전 시장의 이임사는 언중유골(言中有骨)이었다.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고, 눈가는 촉촉이 젖었다.

자신의 소회를 함축한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입니다”라는 말로 입을 연 권 전 시장은 비교적 긴 분량의 ‘준비되지 않은’ 이임사를 소화했다. “어제까지 시장이었지만 자고 일어났더니 ‘전 시장’이 됐다”라며 멋쩍어한 그는 “시장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행운아다. 시민들의 선택을 받아 시장을 했고, 임기를 거의 다 채우고 나가게 됐다”라고 자위했다.

사실상 임기 내내 송사(訟事)에 휘말리며 시정 혼란을 초래하면서 좋든 싫든 조기에 ‘레임덕’을 유발시켰고, 차기 시장 자리를 노리는 여야 정객들이 우글거리는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자신의 직(職)을 ‘선방’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2014년 민선 6기 지방선거에서 가까스로 과반 득표율(50.07%)을 달성하며 시장직에 올랐던 권 전 시장에게 50% 이상의 지지는 시민들이 부여한 큰 혜택이자 갚아 나가야 할 빚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시민들에게 은혜를 갚지 못한 채 시장직을 내려놓게 됐고, “시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드려 송구스럽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대법원의 판단을 대승적으로 수용한다는 권 전 시장은 “포럼 활동은 적법하다면서 포럼 운영을 위한 경비가 문제가 된다고 한다면 앞으로 정치인들이 어떻게 포럼을 운영할 수 있겠는가. 건전한 정치 발전을 위해 이 부분은 재고(再考)해야 한다”라며 담담하게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자신은 ‘뼛속까지 대전’임을 강조한 그는 시장직에서 물러난 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선 잠시 쉬며 고민하겠다고 했다. 3년 5개월, 1233일간 거의 매일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발로 뛰며 대전 발전에 헌신해 왔다고 자부한 권 전 시장은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사실상 정치적 생명이 끊어졌다. 그러나 벌써부터 조심스럽게 ‘사면복권’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문재인 정권 하에서 어떻게든 재기의 발판이 마련될 것이란 관측도 있어 ‘살아있는 생물’인 정치 세계에서 향후 그가 어떤 자리매김을 하게 될 것인가에 이목이 쏠린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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