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부여군수

언제부턴가 시골마을에서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깔깔거리며 골목길을 누비던 웃음소리도 먼 저편의 추억으로 남겨졌다. 허리 굽은 초로(初老)의 모습이 일상이 되어 버린 시골 풍경, 새 생명의 탄생은 기사거리가 될 만큼 특별한 일이 되었다.

OECD 회원국 중 출산율 1.25명으로 꼴찌를 달리고 있던 우리나라는 최근 1.1명까지 떨어져 위기감이 고조됐다. 출산율 제로, 인구절벽, 2305년 대한민국 소멸 등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는 추상적인 단어가 아닌 실제 공포감으로 밀려오고 있다. 저출산 문제가 한국 사회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저출산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였다. 우리보다 앞서 저출산을 경험했던 선진국들은 저마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효과적인 정책들을 터득해 나갔다.

성공사례로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프랑스와 스웨덴은 출산율을 높이고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자녀 양육 비용을 사회적 책임으로 끌어들였다. 양성평등을 기반으로 한 친(親) 출산 문화를 정착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출산과 양육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 차원의 문제로 승화시키고, 제도와 문화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대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인구절벽에서 벗어났다.

전국시대 변법(變法)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진나라의 상앙이 시행한 변법이다.

이 변법의 성공으로 진나라는 부국강병을 이루어 중국을 통일했다. 1차 변법은 호적제 등 강력한 정책의 실천이었다. 2차 변법은 옛 풍속이나 습성을 폐지하는 의식의 변화였다. 상왕의 변법은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걸맞은 의식 또한 갖추어져야 함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다.

우리는 어떠한가? 10년이 넘게 80조 원을 투입한 저출산 대책은 7년 전 수준으로 돌아간 출산율 수치가 보여주듯 실패했다. 그 원인에는 실효성 없는 정책의 낭비도 있었겠지만 이를 뒷받침해주는 의식의 변화가 따라주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책이 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책 ‘82년생 김지영’이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라고 주인공은 묻는다.

이 책은 일상적인 차별과 불평등으로 점철되어 있는 한국여성의 적나라한 삶의 모습을 통해 여성에게 양육과 출산을 전담시키는 전통적 가족제도의 덫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저출산 정책이 다양하게 추진됐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사회적 의식 때문에 자신을 놓아버린 수많은 김지영을 생산했다. 결혼한 여성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저출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한국사회의 실패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여성의 행복은 이제 가정에만 있지 않다. 자아실현을 위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업문화와 사회 분위기는 출산과 양육을 가로막는다.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열차에 올라탄 것이다. 그 열차에서 내려오려면 여성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출산과 양육의 문제를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여 여성의 양육부담을 낮추고, 양성이 평등한 기업과 가족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우리가 만든 세상은 우리 생각의 과정이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라며 아인슈타인은 변화의 시작점을 알려 줬다. 변화는 우리의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