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앞두고 내년 1월까지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국내에서 연명의료 중단 후 존엄사한 첫 사례가 나왔다. 그러나 연명의료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체감은 아직 갈 길이 멀고 의료현장에서 제도 손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어 내년 2월 법 시행까진 험로가 예상된다.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입원 중이던 50대 남성이 임종 과정에서 연명의료를 하지 않고 자연사했다. 연명의료는 위독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실시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말하는 것으로 병원 측에 따르면 환자는 연명의료결정 시범사업이 시작되자 의료진에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의사를 밝히며 서류에 직접 서명했고 이후 물과 영양공급만 받아오다가 병세가 악화돼 임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서도 법적 절차에 따른 첫 번째 존엄사 사례가 나오며 스스로 존엄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하는 웰다잉(Well-Dying)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회적 분위기는 썰렁하다. 연명의료결정법도 본격적인 첫발을 내딛지 않았고 현재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에 견줘 볼 때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한 달간 연명의료 참여 현황을 보면 그 수준이 얼마나 미미한 지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연명의료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전국 10개 기관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건수는 1648명, 실제 말기와 임종기 환자가 쓰는 연명의료계획서의 경우 이번 존엄사 환자 1명을 포함해 10명 미만으로 추정된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내년 2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제도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건 제도가 환자의 선택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임종기라는 의학적 판단이 내려졌을 경우에만 작성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의료계에선 이 시기에 들어갈 경우 이미 환자는 의식불명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그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현재 정해진 대상에서 수개월 내 말기·임종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에 대해서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국회와 정부도 제도 보완에 나섰다. 우선 국회 차원에서 관련 법 개정이 추진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상희(경기 부천소사) 의원은 연명의료계획서의 작성 대상을 넓히는 것을 골자로 한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내달 초 발의를 목표로 관련 사항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이와 맞물려 정부도 개선 방안에 대한 논의에 착수하고 가장 시급한 인식 개선을 위한 대국민 홍보에 집중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생명윤리 관련 예산을 늘려 본격적인 대국민 홍보에 나설 예정이다. 환자들의 개인정보 등 민감한 사항들이 많아 시범사업의 진행 상황을 일일이 말할 순 없지만 이달 말 공식 브리핑을 통해 성과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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