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
한국한의학연구원
문헌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중국 동북방의 연변은 일송정과 윤동주시비가 있는 항일운동의 근거지이자 약 190만 명에 달하는 우리 민족이 ‘중국인 조선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비운의 땅이기도 하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중원 한족(漢族) 문화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으면서 거란·여진 등 다양한 민족의 삶의 터전이었다가 19세기 말, 청조 정부의 ‘봉금정책’(封禁政策)이 해제되면서 본격적으로 우리 민족의 이주가 시작됐다.

일제 침략과 해방, 남북분단 등 격동기를 거치면서 조선족은 중국 56개 민족 가운데 하나로 삶을 영위했지만 언어를 비롯한 다양한 민족문화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보전이 최근에는 소수민족 문화 전체를 중국화하려는 중국 정부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제창과 맞물리면서 한국과 중국 사이에 문화 충돌의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조선족 농악무’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시킨 것을 비롯해 아리랑과 가야금 등을 중국의 국가급 비물질(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또 우리의 전통 한의학을 ‘조의학’으로 부르면서 자신들의 전통의학 범주 안에 포함하고 이를 길림성의 성급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조선족 의약’은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신청한 것으로 ‘중국의 조선족 의약은 조선족 고유의 문화 기초 위에 중의약학 이론을 흡수하고 조선족의 방병치병(防病治病) 경험을 결합해 형성·발전해왔다’고 하면서 중국에서 조선족 의약의 발전과정을 크게 3단계(1920년 이전, 1920∼1945년, 1945년 이후)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조선족의 중국이주 이전에 이뤄진 우리 민족의 중요한 전통의약 문화유산마저도 ‘조선민족의 의약문화’라 하면서 중국문화의 일부로 거론하고 있다. 즉 “조선민족은 역대로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동의보감’, ‘동의수세보원’ 등 풍부한 의학 관련 저작을 지니고 있다. 특히 ‘동의수세보원’은 4권 625조로 구성돼 있는데 이 책은 사람의 체격과 기질로부터 출발해 사람의 체질을 태양·소양·태음·소음의 ‘사상인’(四象人)으로 분류하고 아울러 그에 상응하는 비교적 완전한 진료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의학사상 전무후무한 신학설은 중국 조선민족의학 발전에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라고 하면서 이제마 선생의 사상체질의학마저도 중국문화로 둔갑시키고 있다.

우리 전통의약 문화의 중국화는 중국이 2008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조의사 국가의사자격고시’와 2009년의 ‘연변조선족자치주발전조의약조례’(延邊朝鮮族自治州發展朝醫藥條例)를 통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들은 ‘조의사 국가의사자격고시’를 실시하면서 “조의학을 중국 국가의사자격고시에 편입한 것은 중국이 지니고 있는 소수민족 전통의학이 갖는 영향력을 확대해 중의학의 발전을 촉진하는 중대 조치”라고 밝힌 바 있다.

조례안에는 “조의약 사업의 발전은 마땅히 계승과 창신이 상호 결합한 원칙에 따라야 하는데 조의약의 특색과 우수성을 유지·발양시키며 현대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조의약 이론과 실천의 발전을 촉진해 조의약 현대화를 추진한다”고 기술하면서 조의약을 중국의 중요한 정책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을 천명했다.

‘조의학’과 관련한 중국의 이러한 조치들은 조선족이 중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취해진 것으로 우리 한의학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급히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의 경우 성급 문화유산이 점차적으로 국가급 문화유산으로 승격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조선족 의약도 곧 국가급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개연성은 충분하다.

티베트와 몽골, 위구르는 물론이고 묘족, 장족 등 대다수의 중국 소수민족 전통의약문화가 이미 중국의 국가급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동북공정’을 넘어 ‘중의학공정’을 통해 우리 전통의약 문화를 중국화하려는 중국의 문화침략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의학의 정통성 수립과 더불어 역사문화적 관점에서 우리 전통의약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