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봉 시인·전 대전문인협회장

우리가 마라톤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라톤은 단순히 42.195㎞를 달리는 게 아니다. 마라톤은 철학이고, 과학이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인생의 강을 건너는 법을 알게 된다. 심오한 뜻을 지닌 마라톤이기에 즐기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오늘도 당신에게서 나는 사랑을 배운다. 언제나 넉넉한 품을 가진 당신처럼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당신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빌딩 숲에 갇힌 달은 낭만이 없고, 그리움이 없고,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다. 속이 비어 있다. 그리고 가슴이 차다. 이런 달에 온기를 불어 넣으려면 사랑이란 수액을 주사하면 된다. 사랑은 모든 질병을 치유해 주는 명약이다.

보이지 않는 우물이 깊은지 얕은지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면 안다. 돌이 물에 닿는데 걸리는 시간과 그때 들리는 소리를 통해 우물의 깊이와 양을 알 수 있다. 내 마음의 깊이는 다른 사람이 보내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바치기 위해 장미꽃을 꺾다가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생을 마감한 순수 영혼 시인인 릴케의 마음의 우물은 얼마나 깊었던가? 나는 지금 바닥이 보이는 마른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운 어리석은 강태공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깊이가 있는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워야 고기를 낚는데 마른 저수지에 드리웠으니 낚일 리가 없다. 포도주를 숙성시키듯 영혼도 숙성시킬 줄 알아야 주위에 사람들이 모인다. 그러한 영혼에서는 아무에게나 맡을 수 없는 향기가 있다.

내 마음이 깊으면 고상한 언어와 사상이 들어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깊은 울림과 여운이 동반된다. 그리고는 쉽게 나가지 않는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성자와 악인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악인이 욕망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성자는 그것을 꿈으로 대신한다. 도수 높은 안경알이 노을을 몽땅 빨아들인다. 잘 구워진 고구마 맛이거나 눈 오는 날 구들장의 온기 같은 정을 가진 마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함께 웃었던 사람은 잊을 수 있어도, 함께 울었던 사람은 끝까지 잊히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흥분하고 흔들린다면 아직도 내 마음이 얕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든 모질게 구는 것은 내가 부족한 탓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을 제 집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과 같다.

내 인생의 우산을 준비해 준 당신한테 오늘은 그 우산을 쓰고 마중 나간다. 백로 한 마리 외롭게 물 위를 날고, 고추잠자리 몇 쌍이 짝짓기 하며 내 곁을 맴돈다. 내 마음의 깊이를 알아보기라도 하려는 듯.

마음이 깊고 풍성하면 좋다. 감사는 작은 것도 크게 보이게 한다. 생고무같이 탄력이 좋다. 쥐어짜다 만 빨래 같은 몸과 마음은 안 된다. 천둥이 제아무리 의기양양 울어대도 빗방울이 흩뿌리기 전까지는 몸이 젖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면 내 삶은 날마다 기적 같은 일들로 넘친다.

사랑은 무조건 주고 기뻐하는 마음이다. 진흙 속에서 아름답고 순결한 연꽃이 피어나듯 사랑은 어두운 내 삶이 피워내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백정도 칼을 버리면 부처가 될 수 있다. 자연은 가르친다. 더 겸허해지고 낮아지라고, 계곡물이 따라오며 타이른다. 사랑은 모든 치유의 근본이며 그칠 줄 모르고 샘솟는 묘약이다.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나면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더 깊고 많아진 주름을 마주하고, 빠지는 머리카락에 의욕을 상실한 채 무심한 세월처럼 흘러가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따뜻한 마음의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갈증이 해소되며, 새 기운을 얻는다. 내 가슴에 지지 않는 향기로 남아 있는 사람의 모든 것을 나는 그리워한다. 이제는 잘 결실된 햇밤처럼 영혼도 그렇게 건강하게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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