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평화를 말하고, 평화를 만들고, 평화를 일상생활에서 살아가는 것은 별로 큰 관심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서로 총을 겨누고 폭탄을 떨어뜨리고 발사하는 전쟁상황에서도 그러하지만,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에서도 평화를 말하고 행동하기는 쉽지가 않다. 하물며 그러한 위급한 상황이 보이지 않는 데서, 또는 위급한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갔다고 보여지는 때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더욱 쉽지가 않다. 쉽지 않다는 말은 그것을 설득력 있게 말하고, 꺼지지 않는 불씨로 지펴나갈 어떤 뚜렷한 사건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지난 번 있었던 ‘촛불집회’나 ‘태극기집회’ 같은 굉장한 관심을 시민들이 가지고 참여할 수 있게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평화란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문제이면서, 전쟁의 위기상황을 미리 극복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건이나 사태가 아니라 생활이기 때문이다. 어떤 업적이나 실적으로 무엇인가가 손에 잡히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전쟁상황이 오지 않고, 아름다운 삶을 이루기 위한 어떤 사전작업으로서의 평화만들기는 쉽지가 않다.

더욱이 지금은 서로가 핵폭탄을 완성하여 만들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그것을 어떤 강력한 수단을 써서라도 제재하겠다고 겨루는 판국에서, 또 언제 그 핵폭탄공격을 받을지 모르기에 대피훈련을 아주 치밀하고 질서있게 하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평화를 만들자는 말이나 운동을 펼치기는 어렵다. 그것은 신선한 말도 아니고, 아주 자극하는 감동의 말도 아니며 행동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평화가 절대로 필요한 위급한 상황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가 않지만, 별로 전쟁에 대한 감각이 민감하지 않거나 좀 느슨한 듯한 분위기 속에서 평화를 말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 실효성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상대방과 충분히 대결할 수 있는 핵무장을 하고, 아주 강력한 무력과 방어체계 그리고 공동방위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아주 높은 분위기에서 평화를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른바 강경론이라는 상당히 책임성이 떨어지는 발언들이 호소력이 있고, 동원력을 발휘하는 곳에서는 평화를 말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것은 언제나 단기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면서, 눈에 보이듯이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는 조치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강력한 무력끼리의 대결은 끝없는 무력대결의 상승효과만을 가져와 피차 굉장한 피해와 회복하기 어려운 파괴를 가지고 올 것이 분명하기에, 모두가 그러한 폭력의 길이 아니라 비폭력과 평화의 길로 가자는 주장은 마치 폭풍우 속의 모기소리처럼 아주 작게 들릴지 모른다. 불어오는 강한 바람 앞에 서 있는 촛불처럼 가냘플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할수록 우리는 더 간절하고 지극하게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폭력행사로는 아무리 강력하여도 장기간에 걸친 평화세계를 가지고 올 수 없다고 본다. 언제나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하기에 행복의 길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엄혹한 분위기라 할지라도 평화를 말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엄동설한을 바라보면서도 씨를 뿌려야 하는 농부의 맘처럼, 곧 폭우로 다 씻겨내려갈 위기가 있다고 판단되어도 씨를 뿌려야 하는 농부처럼, 아니면 가뭄이 지속될 것같이 예상이 되는 날씨에도 어떤 믿음 하나 때문에 씨를 뿌려야 하는 농부처럼 어떤 평화의 씨를 뿌려야 하는 아주 절박한 맘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서 매우 작고 가냘프게나마 여기저기에서 평화의 흐름과 운동이 옛날에 비하여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좀 더 자유롭게 평화를 말하고 논할 수 있는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그러나 사회인식이나 의식은 평화론자들에게 별로 유리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평화를 주장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얼마 전 나는 작은 모임에 참석했다. 거기에서 우리 한반도의 평화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금 전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올 다음 세대에게도 물려줄 평화의 세계를 만드는 시금석이기 때문에 그를 위하여 정성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논의하였다. 그 자리에서 특히 나이가 든, 적어도 회갑을 지난 노인들이 앞장서서 평화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도리라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만들기 1000인 은빛(노인) 순례단’을 꾸려 전국토를 기도하는 맘으로 걷기로 하였다. 2018년 2월 28일까지 순례할 사람 1000명과 그들과 함께 할 젊은 명예회원들을 모으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여 2018년 3월 1일부터 평화의 순례를 시작하여, 3ㆍ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 3월 1일까지 전국을 나누어 걷기로 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것을 서약하고, 공개하여 많은 참여자를 찾기로 하였다. 그 뜻에 찬성하는 이들은 peaceonly1000@gmail.com에 연락하시면 된다.

1. 일상에서 평화를 비는 명상과 기도를 이어간다.
2. 우리 안의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고 서로 하나 되는 일에 힘쓴다.
3. 한반도 평화만들기에 힘쓰며 은빛순례단의 순례에 참여한다.
4. 살아가는 지역에서 한반도 평화를 모색하는 대화모임(평화민회)을 만든다.

이 운동에 참여할 노인들과 젊은이들을 기다리고 찾는다.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뒤에 오는 모든 세대에게도, 이 땅의 산천초목과 뭇생명들에게도 평화의 세계를 보장하여 주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믿는 이들을 찾는다. 함께 걷자. 기도하자. 평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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