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역사는 그렇게 반복된다

▲인생의 멘토가 있다는 건 넓은 세상에 내 편이 있다는 느낌이 아닐까. 그래서 든든하고 무슨 일이든 씩씩하게 해보려는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내 인생의 멘토는?

오디세우스(Odysseus)는 B.C 1250년 트로이(Troy)로 떠나게 된다. 헬레네(Helene)와 결혼하기 위해서 경쟁하다가 스파르타(Sparta)의 메넬라오스(Menelaus)에게 밀리고 난 후 뻘쭘하기도 하고 정적으로 제거당할까 두려운 나머지 실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헬레네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돕겠소, 내 순정이오.” 라며 멋진 척을 했었단다.

시간이 흘러 그는 아름다운 페넬로페(Penelope)와 결혼해 작아도 알찬 이타카(Ithaka) 섬의 왕이 됐다. 그러다 파리스(Paris) 왕자와 헬레네의 사랑의 도피로 트로이전쟁을 선포하니 딱 걸려들고 말았다. 신탁을 받아보니 아킬레우스(Achilles)와 오디세우스가 전쟁에 참여해야 트로이를 이길 수 있다고 했으니 아가멤논(Agamemnon)과 메넬라오스는 오디세우스에게 어떠한 빌미를 잡아서라도 데려가야 했다.

농부로 숨어 있으면서 한사코 전쟁에 나가지 않으려했지만 아가멤논이 밭을 가는 오디세우스 앞에 그의 아들을 눕혀놓았다. 아들이 아니면 갈고 지나갈 것이고 아들이면 멈출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멈췄고 오디세우스는 왕의 신분을 노출하고 만다. 이 아들이 텔레마코스(Telemachus)다. 유독 병약하고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나자니 그는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친구 멘토르(Mentor)에게 아들의 미래를 부탁했다.

멘토르는 뛰어난 지성과 숭고한 도덕성으로 정성껏 텔레마코스를 키웠고 전쟁에 나간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돌아왔을 땐 위풍당당한 청년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넓은 아량으로 젊은 청년을 바르고 미래성 있게 지도해주는 스승을 우리는 ‘멘토(mentor)’라 한다.

오디세우스는 참 말을 잘한다. 요리조리 피하기도 잘하고 끼워 맞추기도 잘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머리와 입으로 싸웠던 김유신과 비슷한데 전사 입장에서 보면 정면 돌파하는 계백과 같은 아킬레우스가 멋져보인다.

그러나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고 유명 영화감독은 말하지 않던가. 아킬레우스가 죽고 오디세우스는 살아 길이 남았다. 오디세우스의 조상이 시시포스(Sisyphus)인데 그는 죽음도 꾀를 써서 몰아 낸 달변가였다. 가르치는 자를 멘토, 가르침 받는 이를 멘티(Mentee)라 하고 교육의 전 과정을 멘토링(Mentoring)이라 한다. 과연 나의 멘토는 누굴까.

▲트로이 전쟁의 영웅 팔라메데스. 오디세우스를 능가하는 지략가로 알려졌지만 그에게 앙심을 품은 오디세우스의 부당한 모함에 의해 배신자로 몰리고 말았다.

◆영원한 오디세우스의 라이벌 팔라메데스(Palamedes)

경쟁자가 있다. 선의의 경쟁을 할 것인가, 제거할 것인가. 영웅들의 감추어진 이중성, 꾀돌이 오디세우스만큼 지혜로웠던 인물이 있었다. 이름도 어색한 그는 그리스의 책사였다. 일단 트로이 전쟁을 앞두고 뛰어난 장군이 필요했다. 구혼자의 맹세라는 관습법으로 불쌍한 오디세우스는 헬레네를 구하러 트로이로 가야만 했다. 정부와 야반도주한 왕비를 구하러 가는 원정대에 따라나서야 했던 거다. 가기 싫었던 오디세우스는 미친척하며 소와 나귀를 묶어 밭을 갈고 씨앗대신 소금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때 밭에 아기 텔레마코스를 눕혀 놓았던 게 팔라메데스다. 차마 쟁기로 아들을 갈고 건널 수가 없어 그는 미친 연기를 멈췄다. 그리곤 바로 트로이전쟁에 끌려갔다.

또 한명의 장군이 필요했다. 바로 아킬레우스다. 전쟁에 나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어머니 테티스(Thetis)는 아들에게 여자 옷을 입혀 숨겼다. 그러자 액세서리 방문판매원으로 변장한 팔라메데스는 보석과 장신구 사이에서 칼을 덥석 쥔 아킬레우스를 찾아내 전쟁에 소집했다.

이렇게 트로이 전쟁의 기본을 깔았던 이가 필라메데스였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자 사사건건 그는 오디세우스와 부딪쳤다. 안 그래도 오고 싶지 않았던 전쟁에 ‘저 놈 때문에 왔다’는 마음이 겹치면서 오디세우스는 정적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곤 트로이의 프리아모스(Priamos) 왕과 내통해 돈을 받아 챙겼다고 팔라메데스를 모함했다. 아가멤논은 필라메데스의 막사를 조사했고 바닥에서 오디세우스가 미리 숨겨둔 금덩이가 나오면서 그는 곧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병사들에게 맞아죽었다. 그것도 돌팔매질이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 필라메데스 왕의 아버지였던 나우플리오스(Nauplius)는 각 도시국가를 찾아다니면서 왕비들이 바람이 나도록 꼬셨단다. 참 치졸한 복수법이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Clytemnestra), 이도메네우스(Idomeneus)의 아내 메다, 디오메데스(Diomedes)의 아내 아이기알레이아(Aegialeia) 모두 그의 꾐에 넘어가 바람을 피웠다. 심지어 아가멤논은 부인에게 죽기까지 했다. 오디세우스의 아내도 끈질기게 꼬셔댔으나 페넬로페는 남편을 끝까지 기다렸단다.

이렇게 필라메데스가 제거되면서 모든 전쟁의 공은 오디세우스에게 돌아갔다. 정도전의 계획은 이방원의 부국강병이 됐고 장면의 계획은 박정희의 최대공적이 됐다. 김부식은 정지상의 지식을 삼국사기로 감싸며 자신의 치적으로 만들었다. 전쟁은, 또 역사는 그런 법이다.

글·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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