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낭송 한마당 참가자·관객 북적…얼어붙었던 내면 감수성 깨어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겨울 동장군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몸은 앳된 학생들의 시 낭송 한 번에 무기력하게 녹아내렸다. 고요한 음악소리 위에 얹어진 시 한수는 고이 잠든 내면의 감수성을 흔들어 깨우기 충분했다.

금강일보와 ㈔온누리청소년문화재단 주최로 청소년 시낭송 전국 대회가 열린 16일 대전 서구 가수원동 MG대전서부새마을금고 평생교육문화센터엔 대회 시작 전부터 많은 학생과 학부모, 소식을 듣고 발걸음을 옮긴 대전시민들로 발 디딜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긴장감이 역력한 참가자들은 몇 번을 봤는지도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꾸깃한 종이 하나씩을 들고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시 한 줄에 자신의 감정을 싣고 있었다. 가족도, 대회를 찾은 일반 관객도 이를 알기라도 한 듯 시끌벅적하던 무대 앞 객석은 이내 적막에 휩싸였다.

시 낭송이 시작되자 객석은 참가자의 손짓과 표정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나이는 나이에 불과하다고 했던가. 시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작은 체구와 몸짓에서 나오는 인생의 회환과 삶의 무게가 담긴 목소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다. 그중엔 일찍 사회로 뛰어든 손현규(18) 군도 있었다. 벌써 두 번째 도전에 나섰는데 이번엔 꼭 결과를 얻어가고 싶다던 그는 “바쁜 직장 생활에도 대회를 위해 시간을 쪼개가며 준비했다. 올해는 겨울이라는 날씨에 걸맞은 시를 준비했다. 노력한 만큼 마지막에 웃으며 떠났으면 좋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청소년 대회라고 해서 학교 다니는 학생들만 참가한 건 아니다. 배움에 나이가 없듯 시 낭송에도 세대의 구분이 없었다. 딸 임채원(56)·손녀 김소율(25) 씨와 참가한 정원교(86) 할머니가 그랬다. 나이는 최고령이지만 자식 건사에 문학의 길을 포기했던 한(恨)을 토해내기라도 하는 듯 수려하면서도 묵직한 그의 시 낭송에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박수로 격려했다. 정 할머니는 “3대가 무대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오늘 이 시간은 끝이 아니라 내 문학인생의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라며 뿌듯해했다.

지난해 신설돼 두 번째를 맞이한 청소년부 참가자들의 실력도 돋보였다. 국내에서 흔치 않은 기회이기에 이 대회가 그 누구보다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수상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청소년부 최우수상을 거머쥔 한주완(18·벤자민인성영재학교) 군이 이번 대회가 연말을 앞둔 자신에게 최고의 선물이라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 군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정말 최선을 다했다. 사실 수상까지 기대했던 건 아닌데 생각지도 못하게 상까지 받게 돼 너무 기분이 좋다. 앞으로도 더 많은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며 방긋 웃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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