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9월 지역 문화예술 정책을 현실적으로 짚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출범한 원도심문화예술in행동 창립총회

한때는 문화예술인들의 터전이기도 했던 대전 원도심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으로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 대안들이 제시되곤 있지만 아직은 노력에 비해 아쉬움이 더 큰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절대 현장을 떠날 수 없는 건 문화야말로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중요한 교집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원도심 재생에 있어서 중요한 축을 담당할 옛 충남도청사의 국가 매입이 확정되면서 새해가 밝아오며 원도심에 새로운 활력이 되길 바라는 문화예술계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대전의 100년 역사가 깃든 옛 충남도청사는 그 자체로 대전의 상징이요, 정신이기 때문이다.

◆원도심활성화의 시작과 끝, 옛 충남도청사

대전 원도심 젠트리피케이션은 한때 이곳에 밀집해있던 주요 공공기관들이 둔산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시작됐다. 둔산으로의 기관 이전 행렬은 원도심 토지 이용의 변화를 가져왔고 결국 도심기능은 급격히 저하되기에 이르렀다. 2012년 충남도청의 내포신도시 이전에 원도심은 또 한번 출렁거렸다. 이후 원도심 쇠퇴가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 도청 이전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지속됐지만 지금까지의 논의는 대전의 원도심이 가진 본연의 ‘문화’에 대한 고려를 간과했다. 그 방안이 문화공간이어야 한다는 점에는 다수가 공감했지만 대부분의 대안은 단순한 미술관, 공연장, 도서관, 쇼핑센터 등과 같은 문화시설의 나열이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원도심 재탄생의 공간적 거점과도 같은 옛 충남도청사 활용이 대전의 역사, 문화, 산업, 일상생활 등 지역 사회 곳곳과 연계된 지속성·진정성을 유지하는 틀 안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그래야만 지역 주민에게는 원도심에 거주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 문화예술인들에겐 원도심에서 활동한다는 점에 대한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할 수 있고 이런 점들이 궁극적으로 대전을 찾는 이들에게 지역의 정체성이나 대전 문화가 가진 색깔을 느낄 수 있게 해줄 소중한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원도심활성화의 구심점과 같은 역할을 할 충남도청사의 제대로 된 활용이 중요하다.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무성하다”

대전 원도심은 옛 충남도청사를 중심으로 대전역까지 이어지는 중앙로와 남쪽의 대흥동, 북쪽의 선화·은행동, 동쪽에 중앙동이 핵심이다. 그런데 지금껏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사업들은 대부분 재정비 촉진, 특화거리 조성, 역세권 재정비, 도시환경정비 등 물리적 환경 개선에만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단순한 현상으로만 본 나머지 이의 확산과 억제의 대안으로 부상한 문화예술을 너무 얕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현장의 한숨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7년 내포로 이전한 이후 제대로 활용조차 못 한 채 방치돼있던 옛 충남도청사 부지를 국가가 매입하기 위한 예산이 확정됐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논의가 다시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문화예술계에선 이제 대전시가 나열식 사업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나서 공간거점 확보와 원도심 지역에 산재한 문화예술 자원을 바탕으로 종합 대책을 수립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래 대전이 먹고 살아야 할 먹거리로서, 한때 관(官)이 점유했던 권위적 공간을 시민의 공간으로 재창조해 원도심활성화 문제에 있어 사후약방문식 한계를 탈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근고지영(根固枝榮). 자고로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무성하고 번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 "사람과 공생·동행하는 문화예술 꿈꿔"

박은숙 원도심문화예술in행동 대표

최근 지역의 문화예술단체가 실시한 문화예술인 인식조사 자료를 보면 원도심 현장에서 주 3회 이상 머무는 사람들이 70%는 넘는다. 활동인만 200명, 예상외로 청년 그룹도 상당하다. 원도심에는 상인도, 주민도 있지만 문화예술인들도 하나의 주체적 구성원으로 당당히 자리잡고 있는 거다. 원도심이 가진 본질적 고민인 젠트리피케이션의 해결과 더 나아가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는 원도심을 만들기 위한 공통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인 단체가 있다. 바로 원도심문화예술in행동이다. 박은숙 원도심문화예술in행동 대표를 만나 이들의 문제인식과 문제해결을 위한 지향점을 들었다.

시가 나서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이라는 기치 아래 많은 씨앗을 뿌려온 덕분에 이젠 원도심에도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나 기회가 부쩍 늘어 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제 청년예술인도 원도심에서 활동 여부를 고심하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대변되는 원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사실 예전에 비하면 아직도 많이 어렵기도 하죠. 그러나 시나 현장에 있는 사람들, 시민사회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개선해 온 결과를 보면 지금은 그래도 청년들이 예전에 비해선 원도심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따로 개별화된 모임으로 소통하던 것에서 벗어나 원도시문화예술in의 창립은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특히 원도심 문화예술 환경에 대한 대안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굳이 대전 안에서만 그 해결책을 찾지 말고 대체 다른 지역에서 진행되는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이 뭔지 직접 보면서 얘기해보자는 거다.

“최근 목포에 다녀왔어요. 내년엔 안산을 둘러볼까 생각 중인데 타 지역을 보면 도시재생 과정에 문화예술이 접목돼 재미있게 잘 되는 사례들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 대전도 그런 우수한 부분들은 적절히 콜라보(협업)해서 대전만의 원도심스러운 색깔을 내보려고 하는 거죠.”

원도심에 사는 주민, 상인들과의 공생도 이들의 주된 관심이자 고민거리 중 하나다. 결국 이들과 동행하는 것만이 고질적이었던 젠트리피케이션을 조금이나마 빨리 희석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야 대전에 맞는 원도심 재창조가 가능하다는 것도 이 같은 고민을 하게 된 이유다.

“다른 지역들을 보면 예술인들이 자기영역에만 천착하는 게 아니라 지역민과 상인들과 함께 뭔가를 계속 하려고 시도해요. 좋은 건 수용하고 지역에 맞게 재창조하는 일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옛 충남도청사의 국가 매입이 진행되면서 올해는 어느 때보다 원도심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원도심문화예술in행동은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도 한 ‘사람’을 통한 도시재생을 강조한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거다.

“문화예술인들에게 원도심은 삶의 공간이죠. 문화예술의 원천인 겁니다. 마르지 않고 그곳에서 늘 시작되는 공간이 원도심입니다. 대전의 원도심이 다른 도시하고 다른 건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 중에서도 ‘사람을 통한 도시재생’이에요. 독특한 거죠. 다수 지역들이 건축이나 도로, 거리 이런 공간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대전은 사람을 통한 도시재생이 지향점이에요. 사람의 열정과 비전이 꺼지지 않는 한 원도심이 위기라 하더라도 여전히 힘이 있다고 보고 그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올해도 지속적으로 관심 갖고 응원해줄 수 있는 활동을 펼칠 생각입니다.”

글·사진=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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