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이런저런 문화사를 보기로 하자. 중세는 ‘문트결혼’, ‘프리델결혼’, ‘대리결혼’ 그리고 심지어 ‘장갑결혼’까지 다양한 형태의 결혼유형이 존재한다. 지면 관계로 당시의 결혼유형들의 설명은 불가능하니, 13세기의 결혼연령의 적령기만을 보자. 당시는 남자가 14살, 여자는 12살이다. 하지만 신학자들이 12살 아래의 결혼을 반대하였고, 취리히나 스위스 등에서는 여자는 13살, 남자는 14살 아래의 결혼을 금지령을 반포하기도 했다.

기억할만한 것은 당시 이들의 결혼이라는 것은 꼭 부부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거다. 귀족과 왕족 층에서는 정략결혼이 성행했다보니 자식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들이 서로들 사돈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럼 사랑 때문에 하는 결혼은? 우리가 잘 아는 로미오와 줄리엣 얘기나 그리고 비극적인 아벨라이드(Abaelardus:1079~1142)와 엘로이즈(Heloisa:1095~1164)의 사랑이야기들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신학자인 아벨라이드는 자기 제자인 엘로이즈와 사랑에 빠져서 아들까지 낳았다. 이 사실을 안 엘로이즈의 삼촌이 나서서 아벨라이드의 교수직을 파면시켜버린다. 슬픔을 안은 채 이 둘은 각각 수도원으로 들어가 일생을 사랑의 편지를 교환하면서 삶을 마치는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를 얘기로 남아있다.

중세의 유명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von Aqinas:1225~1274)의 학설(?)을 보자. 그가 말하길, 여성들이 섭취한 음식은 단지 피로 들어간다. 반면에 남자들이 먹은 음식은 정자에 들어간다고! 이 정자가 결국은 남아를 생산케 하지만, 만약에 정자에 결함이 있을 경우는 딸을 낳게 된다나!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 이런 신학자의 주장을 파헤쳐보면 사실은 참으로 책임 없는 말인 듯한데, 당시는 이런 신학자의 말을 마치 신의 말처럼 믿고 떠받들었다.

중세의 유명한 수도승 베른홀트(Bernhold von Regensburg:1210~1272)는 “남자들은 전쟁을, 여인들은 집에서 물레를 돌려라”라고 했다. 아무튼 당시는 여자란 그저 집안을 돌보는, 그야말로 청소하고, 아이들 양육시키는 것 그리고 성적인 대상으로 간주했단다. 우리네의 지나간 시대와도 조금은 유사성이 느껴진다.

중세의 교회는 수도자들의 독신제(Zoelibat)를 실현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결과는 그리 시원치 못했다는 것은 역사서에서 많이 본다. 브로이어스(D. Breuers)에 의하면, 당시의 많은 수도원과 수녀원들이 창녀촌과도 유사했다는 것을 밝히는데, 이런 얘기는 동양인인 우리도 이미 이리저리 많이 얻어들은 터다.

수도자들의 이런 규범에 어긋난 행동들이 일반적인 부부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베른홀트(Bernhold von Regensbug)가 나서서 설교를 시작하는데, 다름 아닌 마르쿠스 기념일, 성신강림일 전 3일간, 그리고 다른 축제일, 여인들이 임신했을 때나, 산욕일 때, 단식/금욕일이나 성탄 즈음에 부부생활을 하지 말라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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