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의 페이스북을 캡처한 사진.

가장 앞서 달려가는 것으로 보였던 유력 주자가 스스로 레이스를 포기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위에 오르며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그의 전격적인 ‘퇴장’에는 자의와 타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련 기사 - 박범계 불출마…대전시장 선거 판도 새 국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자 적폐청산위원장, 대전시당 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서구을)이 6·13 대전시장 선거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간 ‘출마냐, 불출마’를 놓고 고심을 거듭해 온 박 의원은 지방선거를 150여 일 앞두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불출마의 변을 밝혔다.

최근 “SNS로 출마 여부를 밝히겠다”라고 발언해 불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예견됐던 박 의원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민을 끝내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지금 하던 일을 멈추고 새롭게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많은 부담이 따른다. 저도 인간인지라 여론에 흔들리고 새로운 도전에 응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침과 저녁, 서로 다른 결론에 마주하는 저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너무도 많은 대전시민들의 분에 넘치는 기대와 신뢰가 고뇌의 밤을 지새우게 했다. 하지만 이제 고민을 끝내고자 한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촛불국민의 적폐청산에 대한 여망 위에 탄생했다. 조사와 수사는 중단이 없었으나 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은 아직도 먼 길이다. 저 혼자만이 감당할 과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재작년과 작년 저는 치열했다고 자부한다. 지금 보내주시는 시민들의 기대는 맨 앞에서 격한 목소리를 내는 저에 대한 응원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촛불은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밝혀준다. 동시에 촛불은 불의를 불사르는 불쏘시개이기도 하다. 촛불국민의 가장 큰 열망은 문재인정부의 성공이다. 대전시민들 역시 촛불국민이다. 절대 다수의 분들이 문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저를 신뢰해주시는 시민들께 보은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저는 국회에서 저를 선량으로 만들어주신 유권자들의 지엄한 명령을 받들겠다. 그것이 대전시민들의 기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엎드려 이해를 구한다”라며 지방선거 정국 한복판에서 물러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박 의원의 불출마 결단에는 현 정권의 국정기조인 ‘적폐청산’ 작업의 선봉에 서 있다는 부담감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MB(이명박) 정권 비리 처단,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 등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직을 맡은 지 불과 5개월 만에 자신의 영달을 찾아 지방선거에 뛰어드는 듯한 모양새가 그에겐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지역 현안을 놓고 대립각을 세워온 권선택 전 시장을 낙마시키고, 마치 박 의원이 그 자리를 꿰차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는 데 대한 곱지 않은 시선, 화려한 중앙정치권에서의 활약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역 기반, 박병석 의원(서구갑, 5선)과의 지역 패권 경쟁에서 밀리는 양상을 보여온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박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질 가능성이 있었던 서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무산됐고, 보선을 염두에 두고 물밑에서 움직였던 여야 정치인들의 시계(視界)는 2020년 4월 21대 총선으로 조정됐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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