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과 장모님의 편지

금강일보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효와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임석원의 자전적 에세이 ‘나는 내 아내가 너무 좋다’를 온라인판을 통해 연재합니다. ☞본보 2017년 8월 9일자 10면 보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세대로, 임석원의 에세이는 그 시대에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 가지도 해 보지 못한 채 오직 가족만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한 남자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곁에서 묵묵히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준 아내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을 전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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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과 장모님의 편지

이즈음 어머님과 장모님께서 보내온 편지를 소개한다.

먼저 아내가 본격적인 시집살이로 힘들어하던 때 내가 어머니께 전화로, 그리고 편지로 아내의 처지를 개선하여 주길 부탁드리자 어머니께서 써 보내신 편지다.

석원아 보아라.

네가 보낸 편지 잘 받아보았다.

네가 염려하는 네 아내는 네가 있을 때보다 더 관심을 쓰고 있으니 아무 염려 말아라.

6월 초부터 꽃꽂이도 나가라고 용돈으로 한 달에 3만 원 주던 것 6만 원 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고 제 잡비 보태 쓰라고 했다.

아침은 나랑 같이 하고 점심은 싸 가지고 가고 저녁식사는 제가 들어와서 한다.

쉬고 저면 쉬고 자고 저면 자고 하니, 네가 없어서 좀 쓸쓸할 것이지만 주님을 의지하고 몸 건강하게 집에서 편히 있으니 아무 염려 마라.

선화동 친정집에 가서 있다가 오라 해도 안 간다 하니…. 또 혜숙이(대학교 다니는 여동생) 방학하면 친정집에 가서 쉬고 오랄까 한다.

부디 부탁한다.

네가 염려한다고 한 치도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으니 하나님이 주시는 직분 잘 감당하며 모든 염려는 사탄이 주는 것이고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줄 알고, 사탄에게 져서 근심하거나 염려해서 몸이라도 쇠약해지면 좋아하는 것은 사탄이다.

염려 말고 몸 건강하게 하나님이 주시는 그 직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네 사명이다.

네가 건강한 것이 부모님께 효도이며 아내에게도 좋은 남편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부디 염려 말고 네 평안이 내 평안이며 네 평안이 네 아내의 평안이다.

부디 아무 염려 말고 맡은 바 일에 충성하며,

기도를 쉬지 말고 아침에도 기도 밤에도 기도하며 건강하기 바란다.

1984년 6월 10일

어미로부터

옛말에 ‘방에 들어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말이다. 어머니는 ‘며느리는 쉬고 싶으면 쉬고 자고 싶으면 잔다’라고 한다. 시부모 시누이 시동생들과 살고 있는 며느리가 어떻게 쉬고 싶을 때 쉬고 자고 싶을 때 잘 수가 있겠는가? 아내는 다리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하루 종일 일만 한다는데, 어찌하면 좋은가?

다음은 장모님의 편지다.

임 서방 보게

훌훌히 떠나간 후 소식 몰라 궁금하던 차 편지 받아보니 반갑기 한이 없네.

그간도 이국만리 타국에서 고생이 많겠지. 그러나 별고 없이 지낸다니 다행한 일이구먼.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네. 편지 받고 바로 답하려 하였으나 집이 팔려 집 보러 다니느라 분주했고 그간 할아버지 생신도 되고 이일 저일 분주하여 늦어서 미안하네. 이해하게.

가내 별일은 없으니 안심하게.

남아 대장부가 한 뜻을 품고 시작했으면 끝맺음을 잘 해야 하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는 법, 그러기에 서로 도우며 격려하며 모자란 것 채워주며 살아가는 게 아닌가? 그러나 모든 일을 심사숙고하여 결코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하네. 환경에 지배를 받고 그때그때 감정에 치우쳐 잘못 일 처리하고 후회해서는 아니 되네. 성공 실패 꿈꾸면서 울고 웃는 그 순간에 짧은 인생길은 다 끝나는 것이니 가치 있게 없어서는 아니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랄 뿐이네.

경옥이는 너무 염려 말고 위로하고 격려하여 참고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게.

행여라도 어머님에게 경옥이 위하고 아끼는 투의 말이나 편지는 삼가 조심하게.

도리어 역효과로 심한 타격은 본인이 받는 것이니 경험이 많은 선배의 말로 알고 명심하게.

부모 슬하에서 아내를 거느리려면 조심조심 지혜롭게 처신해야 양 편이 다 평안한 것, 부모 편에 서면 남편 하나 바라고 시집온 아내가 너무 외롭고 절망이고, 아내 편에 서면 부모들이 배신감에서 반발을 하게 되니 또한 집안이 불편하고 부모 또한 허전한 것, 부모도 결혼 이전의 부모와 결혼 이후의 부모와는 사고방식과 이해가 다르다는 것 명심하고, 총각시절 부모로 알고 언어 행동을 하면 그건 큰 오산이네.

쓸데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은 것 같구먼. 그러나 딸의 평강을 염려하는 어미의 노파심에서 한 말이라 생각하고 너그럽게 양해해 주게.

그저 부탁은 틈나는 대로 성경 보고 항상 기도하며 찬송하고 하나님 의뢰하고 주님 손잡고 동행하길 바라며 부탁하네.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는 물질만이 다는 아니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여야 하네. 외로울 땐 기도하고 쓸쓸할 땐 찬송하고 하루하루를 승리함으로 평생 승리자가 되어야 하네.

할 말은 많으나 지면으로 다 쓸 수 없고 오늘은 이만 필을 놓겠네.

부디 몸조심하고 잘 있게.

1984. 6. 24.

장모가

두 분 어머님께서 써 보내주신 편지 글들은 구구절절이 신앙인의 바른 교훈이다. 나를 낳고 가르쳐준 어머니나 아내를 낳고 고이 길러 주신 장모님이나 나의 평생 짝이 된 나의 아내나 모두 이렇듯 확실한 신앙의 여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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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석원은...

1956년 지리산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전고와 한남대를 졸업한 후 1980년 S그룹 S건설에 입사해 23년을 근무하면서 사우디·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8년간 생활했다. 2003년 영국 유통회사 B&Q 구매이사, 2004년 경남 S건설 서울사무소장으로 일했다. 2009년 H그룹 H건설에 입사해 리비아에서 자재·장비 구매업무를, 2011년 E그룹 E건설에 입사해 중국과 동남아 대외구매를 담당했고, 2013년에는 전북 J건설 소속으로 사우디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34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미군부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분당 판교지역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인생 후반기엔 ‘책 읽고 여행하고 글 쓰는 삶’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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