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한남대 총동창회장 / 전 대신고 교장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날 로마의 귀부인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다가 자신이 아끼는 보석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부인들은 지니고 있던 다이아몬드나 패물을 뽐내면서 조용히 앉아있는 집주인에게도 갖고 있는 보석을 보여 달라고 말했다. 그때 여주인은 어린 두 아들을 불러 양쪽에 세웠다. 그리고는 둘러앉은 부인들에게 이 아이들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보석이라고 소개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여인의 남다른 자식 사랑에 크게 감동을 받았는데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몰랐다.

지난 연말에 수필가 윤월로 선생님께서 수필집 ‘고마운 일상’을 보내주셨다. 책을 펼치니 ‘코르넬리아의 보석’이란 작품이 첫 페이지에 실렸다. 읽어보니 귀부인들에게 자기의 두 아들을 보석이라고 소개한 현숙한 여인이 바로 코르넬리아라고 소개됐다. 그녀는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의 한니발을 물리치고 로마를 구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둘째 딸이다. 그리고 로마의 호민관으로 대로마 건설에 공을 세운 그라쿠스 형제(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 말이 있다. 모든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사랑한다. 그러나 패물 자랑을 하는 여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 아이들을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아마 함께 자리했던 여인들이 속으로 비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코르넬리아의 두 아들은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로마의 역사를 장식한 훌륭한 인물이 됐다. 옛날 어른들도 가장 귀한 보석이 인보석(人寶石)이고, 제일 아름다운 꽃이 인화초(人花草)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바로 사람이다.

연말부터 언론에 오르내리는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면서 아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5살짜리 고준희 양을 친아버지가 폭행하고 살해한 뒤 암매장한 사건과 술에 취해 새벽녘에 귀가한 어머니가 방화해 어린 세 자녀의 목숨을 잃게 만든 끔찍한 행동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마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고 자녀 양육이 힘들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2010년 이후 젊은이들이 취업난과 생활고 때문에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했다고 해서 ‘삼포 세대’라고 부르고, 그 위에 인간관계와 주택구입까지 포기하여 ‘오포 세대’라고 일컫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젊은이들에게 암울한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다.

그런데 조선일보 1월 1일자 ‘출산·양육과 행복도의 상관관계’ 기사를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우리 사회의 앞날이 밝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결혼 및 육아세대인 25~45세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들의 염려와는 많이 달랐다. 자녀를 기르는 대다수 기혼자들이 아이들을 ‘귀한 선물’이자 ‘행복’으로 여기고 있었다. 자녀가 있는 기혼자들의 97%가 ‘아이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답했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가치와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에 95%가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아이가 생긴 후 삶의 질이 어떻게 바뀌었느냐는 물음에는 78%가 출산 이전과 비교해 출산 이후 삶이 좋아지거나 비슷하다고 답했다. 다만 혼인하지 않은 여성의 39%만이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다’고 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가 아이를 낳아 기를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혼을 해도 양육비와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 출산을 꺼린다고 한다. 인구가 감소하는 우리나라 장래를 생각하면 매우 암울하기만 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염려가 기우(杞憂)임을 알게 됐다. 기혼자들은 부부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으로 출산하고,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다는 성숙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행복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 든든하다. 아이들이야말로 우리들의 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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