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출발점 참학력 신장 … 도착점은 행복한 인재 양성”

수 십년 동안 우리 교육은 입시 위주의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돼 ‘미래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이라는 교육의 본질을 외면했다. 그렇기에 본질에 충실한 교육으로 거듭나려한 김지철 충남도교육감에게 지난 42개월은 짧지만 질곡의 세월이었다. 참학력 신장을 외치고 학교혁신을 부르짖는 그에게 ‘진보’라는 멍에를 씌워 번번이 제동을 거는 등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진보’라는 꼬리표를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뚝심으로 지난 3년 반 동안 충남교육의 혁신을 이끌었다. ‘교육의 출발점을 학생에게, 도착점을 행복에 둔다’는 그의 교육철학이 원동력이었다. 첫 진보교육감으로서 그동안의 소회와 그가 꿈꾸는 충남교육의 미래를 들어봤다. 편집자

- 충남교육의 지휘봉을 잡은 지 3년 반이 지났다. 첫 진보교육감으로서 소회를 밝혀 달라

“지난 3년간 대과없이 충남교육을 이끌 수 있도록 성원해주신 도민여러분과 학부모들께 감사드린다. 특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해주신 2만 8000여 교직원들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교육에서 진보와 보수의 구분처럼 무의미한 것도 없다. 지난 3년 반 동안 우리 교육이 과거와 같은 경쟁중심 서열화 패러다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협력하고 상생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교육으로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지 않고 충남교육을 이끌었다. 그것이 진보라면 나는 진보 교육감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 교육을 진보와 보수의 틀에 가두어놓고 이분법적으로 편 가르기를 하려던 시도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도민과 교사들은 개의치 않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위해 힘을 보태 주셨다. 그에 감사할 따름이다.”

- 취임 이후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정책이나 사업은 어떤 것인가.

“그동안 ‘참학력 신장과 진로진학 강화’라는 화두를 잡고 충남교육을 전국 제일 공교육 정상화의 모범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취임초기 21개 교로 시작한 행복나눔학교(충남형 혁신학교)가 3월이면 전체의 10%가 넘는 74개 교로 늘어난다. 이 학교들이 전진기지가 되어 충남교육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 넣었다. 97%의 학교에서 교사학습공동체를 운영하며 공부하는 교사상을 정립했고 학교평가를 폐지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초등학교 한글수업 강화와 일제식 지필평가 폐지, 고입선발고사 폐지 등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천안 고교평준화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천안지역 중학교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해 출발선이 평등한 교육을 실현하려 노력했다.”

- 그동안 추진했던 정책이나 사업성과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면.

“취임 이후 추진했던 사업의 대부분은 학교를 어떻게 혁신하고,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게 해줄까 하는 것에 지향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도입 2년차를 맞는 천안 고입평준화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높은 만족도를 보이며 안착 단계로 접어들었고 혁신학교도 74개로 늘어나면서 혁신교육의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순기능보다는 부작용만 컸던 학교 평가를 없애고 불필요한 잡무를 줄이면서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마을교육공동체를 통해 온 마을이 함께하는 교육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조직의 측면에서는 불필요한 의전을 없애고 인사이동이나 명절 때 관행시 되어 왔던 선물 주고받기를 금지시켰다. 또한 투명한 인사를 정착시켜 비리 교육청이라는 과거 불명예를 완전히 벗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 또한 성과라 자평한다.”

- 진보 교육감으로서 계획했던 만큼 충남 교육의 혁신을 꾀했다고 생각하는가.

“역설적으로 보면 우리 교육청의 정책들이 기존 교육의 근간을 뒤집어 놓을 만큼 급진적이거나 진보적이었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충남교육을 혁신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교육 본질에 충실한 충남교육을 만들고자 노력했을 뿐이다. 교육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그것이 진보라면 진보라 하겠다. 학교장들에게 학교의 치적을 쌓는 성과를 요구하거나, 교사들에게 서열화 방식의 수업 방법을 내려놔 줄 것을 요구했다. 참학력, 출발선 평등, 인권존중, 안전한 학교, 협력하고 상생하는 공동체 구현을 위해 일관된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그런 노력들로 인해 교육부로부터 3년 연속 우수교육청으로 선정됐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수준은 아닐지라도 충남교육의 혁신 정도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본다.”

- 공약 사항인 학교인권조례 제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동안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것은 아니었는가

“학교인권조례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 지속되고 있어 안타깝다. 인권 문제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가치의 문제인데도, 한쪽을 보장해주면 다른 한쪽이 잃게 되는 게임의 문제로 생각하고 반대하는 현실의 벽 앞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전국적으로도 인권조례를 도입한 교육청은 4곳에 머무른다. 이른바 진보교육감 진영이라고 하는 교육청에서도 초선 임기 중에 완성한 사례가 없다. 충남교육청은 그동안 초안을 만들고 도의회와 여러 차례 논의를 하는 등 차근차근 조례 제정을 진행시켜 왔다. 하지만 충남인권조례와 관련한 논란이 커지고 충남노동인권센터와 맞물리면서 조례 제정이 주춤하고 있다. 더디 가더라도 제대로 가는 게 중요하다. 좋은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최대 다수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중단된 절차를 다시 밟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조례안이 도의회에 제출되도록 하겠다.”

- 최근 유치원에서의 영어 등 선행학습 금지에 대해 찬반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선행학습 금지 문제는 교육적으로 바라보면 답이 있다. 교육학자들은 만 5~7세 사이에 과도한 교육을 받으면 13~14세 때 이르러 정서적 결핍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유치원에서 문자나 숫자를 교육하지 않는다. 한글은 모국어인데 모국어를 사교육으로 가르치는 곳은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교육학자들의 이 같은 주장에 충분히 공감한다. 유치원에서는 유아발달정도에 맞춰 개념형성 정도만 교육하는 게 맞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만장일치로 선행학습을 금지시키기로 정리했다.”

- 편성된 올해 예산 중 상당액이 도의회에서 삭감됐다. 올해 사업추진에 차질이 없겠는가.

“지난 연말 도의회에서 올해 편성예산 중 123억 원을 삭감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살림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삭감된 예산 대부분은 4차 산업혁명 대비 미래교육과 농산어촌 마을교육, 혁신학교 운영,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자유학기제 확대 등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특히 고입과 대입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의 진로 상담활동 예산이나 저소득층 및 맞벌이 부부에게 필요한 교육프로그램 운영비, 찜통교실이나 비새는 교실을 고치기 위한 예산 등이 삭감된 것은 가슴 아프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간다. 현재 예산으로는 정상적인 충남교육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올해 예산은 상반기에 최대한 투입해 운영하고 향후 추경 등을 통해 필요예산을 확보함으로써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겠다.”

- 교육감 선거가 5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재선에 도전할 생각인가

“아직 교육감 선거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다. 교육계 원로와 시민사회단체 등의 여론을 충분히 들은 뒤 출마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지금은 학교혁신을 위해 매진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 앞으로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싶은 정책이나 사업은 무엇인가

“올해 충남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이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그리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 충남교육의 방점을 참학력과 인성교육에 두었다. 참학력의 기본은 기초 학력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니만큼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최소 학업성취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기초학력 책임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할 생각이다. 인성교육도 강화해 타인이나 공동체는 물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역량을 갖춘 민주시민을 기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더불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창의융합형 미래인재 교육에 더욱 매진하겠다. 자유학기제를 자유학년제로 확대하고, 마을교육공동체를 활성화하며 소프트웨어 교육도 강화할 것이다.”

대담=이석호 내포취재본부장

정리=문승현 기자 bear@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