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대전공고 교사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연다. 밤 12시쯤 자려고 누웠지만 눈 감은 채 떠오르는 생각들을 눈동자로 받아 굴리고 있었다. 잠들 리가 없다. 한글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단축키를 눌러 줄에 5, 칸에 1을 입력하여 표를 만든다. 둘째 줄에 ‘트라이앵글’이라 치고 블록을 지정하자 뜻풀이가 보인다. ‘[명사](악) 타악기의 하나. 강철 막대를 정삼각형으로 구부려 한쪽 끝을 실로 매달고 금속봉으로 두들김<소리가 맑고 높음>.’

재작년에는 교사 독서모임에 참여했었는데 작년에는 담당 선생님이 전근하셔서 모임이 이어지지 못했다. 물론 모임 운영자 제의를 거절한 내 탓도 있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선생님들은 그렇게 각자 책을 읽어왔다. 방학 전에 내년 교사 독서모임 운영 제의를 또 받았다. 확답을 드리는 대신 마음에 담아 두고 계속 생각해 왔던 것이다.

모임 이름을 ‘트라이앵글’로 정하고 그 의미를 밝힌다. ‘세 꼭지(교사, 학생, 책)에 있는 독립적인 주체(개성), 세 꼭지를 연결하는 세 선분(소통), 막대로 어느 선분을 두들겨도 소리를 냄(공유)’. 내친김에 칸을 추가해서 모임 시간과 장소, 활동내용, 필요물품까지 적어본다. 두 칸 다섯줄을 채우고 나니 새벽 3시 경이고 방학 삼일 째 날이고 새해 첫 날이다.

교무실에서 책을 자주 읽는다. 정신없이 업무로 바쁜 선생님 곁이면 왠지 죄송하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 아니면 업무를 잠깐 미루고 조금이라도 책을 읽고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몸과 마음이 차분해져 일이 잘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간혹 학생들이 대놓고 비난하고 짜증을 내도 이내 평정을 찾곤 한다. 책을 조금씩이라도 자주 읽는 이유다.

혼자 읽기에도 힘은 있지만 함께 읽기의 힘은 세다. 누군가의 맛집 탐방후기에 ‘저도 먹었는데 정말 맛있어요.’, ‘전 별로던데.’라며 댓글을 남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잘 사는 일이다. 최소한 한 인간(작가 또는 주인공)을 공유하며 진지하게 탐색하고 자신을 성찰하여 상대방을 존중하는 그릇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불어 사는 데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여럿이 책을 읽을 이유다.

잘 살려면 맛집 탐방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트라이앵글’을 사제동행 독서모임으로 꾸려가면 학교예산에서 운영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올해 계획하고 있는 교내 독서 관련 행사에 학생 도우미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 학생들을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하고 이 아이들을 데리고 동아리를 꾸려 독서모임 월간지를 발간해서 활동내용을 공유하면 좋을 것 같고, 도우미와 월간지 이름을 통일해서 지으면 어떨까… 떠올랐다. ‘호모 부커스(Homo bookers)(도서평론가 이권우 씨의 책 제목이다.)?!’ 저장해 놓은 표에 또 칸을 추가한다. 오늘도 일찍 자긴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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