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5월, 프랑스에서 만 39세의 정치 신예 에마뉘엘 마크롱은 대선과 총선을 잇달아 제패했다. 마크롱은 거대양당(공화·사회당)의 대권 주자들을 잇달아 물리치고 ‘선거혁명’을 이뤄냈다. 창당한 지 1년2개월밖에 안된 정당이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한 것은 현대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일이었다.

국민의 당 안철수 대표의 거침없는 합당 행보를 보면 제2의 마크롱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안 대표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는 어제 합당을 통한 통합개혁신당(가칭)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통합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국회의석수가 많은 국민의 당이 바른정당을 ‘인수합병’한 것이다. 안 대표는 2012년 9월 새 정치를 기치로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정계에 입문한 뒤 창당과 합당을 잇달아 추진해왔다. 특유의 ‘벤처정치’ 실험이다.

새정치연합 창당을 추진하다 민주당과 합당,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 ‘문재인 체제’로 구축되자 ‘반문’(반문재인) 개혁을 주장하며 20대 총선을 앞둔 2015년 말 탈당해 지금의 국민의당을 만들었다. 국민의 당은 총선에서 40석을 확보해 의석수에서 3위에 오르는 위력을 보였다. 안 대표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 역시 3위에 오르는 저력을 나타냈다. 이제 안 대표는 대권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대권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는 기세다. 안 대표는 지난 해 8월 국민의 당 전당대회에서 대표가 돼도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없다고 공언했다. 안 대표는 대표 수락연설에선 “광야에서 쓰러져 죽을 수 있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제2 창당의 길, 단단한 대안 야당의 길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국민의 당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통합을 밀어붙였다. 국민의 당내 통합찬성과 반대파 사이의 중재파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 대표측 대변인은 호남 중진들을 향해 '더 이상 구태정치, 기득권정치의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선택하라'며 탈당을 압박했다.

국민의당 통합 반대파인 천정배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합당은 촛불국민혁명 완성을 가로막는 퇴행적 폭거”라고 비판한다. 천 의원은 국민의 당 창당 공동대표였다. 안 대표는 통합반대측의 인사들을 설득하고 당내 갈등을 원만하게 수습하는 노력을 얼마나 기울여왔을까. 안 대표는 당내 반대세력을 자신의 대권가도에 도움이 안 되는 세력으로 치부해버린 건 아닐까. 안 대표는 자신의 길을 갈 것이고, 이를 따르지 않겠다면 알아서 비껴달라는 식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안 대표와 유승민 대표는 어제 “통합개혁신당은 낡고 부패한 구태정치와 전쟁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당 창당 당시의 다짐을 빼닮았다. 국민의 당 창당의 슬로건은 ‘담대한 변화’였다. 안 대표는 국민의 당을 변화시키는 데 얼마나 몸부림쳐왔을까. 국민의 당 대선평가위원회가 지난 해 대선 후 작성한 ‘19대 대통령 선거 평가보고서’를 보면, 당 중앙선대위원회는 ‘자기 사람 심기 및 자리 나눠주기 식의 구시대적, 비효율적 운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 후보는 안보, 대북정책, 사회정책에 있어 이전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입장이 불분명했고, 개념이나 철학적 이해, 가치관의 정립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대선을 치렀던 것으로 조사됐다. 안 후보가 주요 공약을 변경하면서 당과 충분한 소통을 하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안 대표가 이런 문제들을 이 정도에서 묻어두고 통합을 한다면 새 정치가 실현될까.

우리나라에서 제3당의 의미는 작지 않다. 제3당이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간다면 거대 양당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거대 양당은 낡은 정치행태로는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들게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되고,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가열 차게 벌여나갈 것이다. 결국, 제3당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 나라의 정치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괜찮은 3당의 등장을 기대하는 필자로선 안 대표의 행보가 실망이다. 프랑스 마크롱의 성공 배경은 기성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를 깨는 비장한 각오와 실천이다. 안 대표는 대통령 ‘꿈’이 국민과 함께 꾸는 ‘꿈’일 때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