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영화 ‘신과 함께’가 13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주 모처럼 일찍 퇴근한 아들과 함께 이 영화를 봤다. 작년 가을 처가에 온 사위, 아들과 함께 영화 ‘남한산성’을 본 뒤로 처음이니, 이래저래 화제가 되고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를 뒤따라 보는 셈이다. 아들이 전날 예매했는데도 좌석이 앞쪽이라서 조금 불편했지만 금세 적응이 됐다.

30대 중반인 아들은 요즘도 만화를 즐겨보는 편이라서 ‘신과 함께’의 원작인 만화에 대해 대략 설명했지만, 대학 생활 이후 지금까지 만화에 흥미를 잃어버려서인지 아들의 설명이 잘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1960년대 시골 장터에서 광목으로 울타리를 치고 원두막에서 상영했던 영화 ‘지옥문’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제목부터 무서운데도 가설극장과 영화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울타리를 지키는 아저씨들 몰래 들어가 보려고 주위를 빙빙 돌며, 밖으로 들리는 커다란 울부짖음과 신음소리에 무서워 등줄기에 소름이 끼치곤 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야 열린 출입문으로 서둘러 들어가 웬 스님이 지옥에서 몸부림치는 어머니를 보며 눈물로 기도하다 부처님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해내는 마지막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어른이 돼서야 그 영화가 목련존자가 지극한 효성으로 지옥에서 어머니를 구원한 불교 설화임을 알았지만, 한동안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 가위 눌리면서 착하게 살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신과 함께-죄와 벌’을 보기 전에, 최근 계속 드러나는 사회 지도층의 파렴치한 범죄에 대한 엄한 처벌이 요구되는 사회적 분위기와 어울려 이렇게 인기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인과응보의 종교적 진리를 영화를 통해 확인하는 대리만족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엄청나게 투자한 게 실감나는 대형 판타지 영화여서 좀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메시지를 중시하는 세대라서 그런지, 스릴과 반전 그리고 정교한 촬영기법 등에 만족하는 아들과는 달랐다.

영화의 줄거리는 화재 현장에서 여자아이를 구하다 숨진 소방관이 저승 3차사의 안내를 받으며 49일 동안 7개의 지옥?살인·나태·거짓·불의·배신·폭력·천륜-에서 재판을 받고 마침내 무죄 선고를 받아 환생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하나하나 지옥을 통과할 때마다 정의롭게 숨진 망자의 감춰진 죄가 드러나지만, 3차사의 개입과 적극적인 변호로 그 이면의 진실이 극적 반전을 통해 밝혀진다. 그렇다보니 관객들은 계속 긴장하게 되고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에 정교한 컴퓨터그래픽으로 시각적 특수효과를 충분히 살렸으니 인기를 누릴 만하다. 그래서 대만이나 홍콩 등 해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나 보다.

영화를 본 이후 매일 뉴스를 보면 전직 대통령의 각종 권력형 비리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또다시 검찰 조사와 구속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7개 지옥의 죄를 상당 부분 짓고서도 영화 주인공과 달리 자신의 죄를 인정하거나 뉘우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보복”이라며 희생자인 양 자신과 세상을 속이려 한다. 그것도 장로님이 말이다.

초기 기독교에선 내세의 축복을 보장하는 천당이나 그 반대인 지옥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지 않았고, 기원 후 1000년이 지나서야 지옥에 대한 위협과 죽음 이후의 천국이 기독교인이 되고자 하는 주된 이유로 부각됐다 한다. 특히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오직 은혜로’가 강조되면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천국의 복을 누릴 수 있다는 이른바 헐값의 용서와 값싼 은혜가 개신교에 팽배하게 됐다 한다. 나치의 억압에 적극 맞서다 처형된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죄를 뉘우치지 않는, 십자가가 없는 싸구려 은혜는 우리 시대의 치명적인 적이며,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고자 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은혜, 값비싼 은혜를 얻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오늘의 기독교가 귀 기울여야 할 가르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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