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배역이라도 새로운 체험 행복”

 

“모든 단역배우들의 꿈이죠. 누구지, 누구지가 아니라 이름 뒤에 배우라는 두 글자가 붙는 거 말이에요.”
지역에서 8년째 단역배우 생활을 하고 있는 주문수 배우의 말이다.

영화 속 화려한 주인공 뒤에는 건달1, 경찰들, 거래처사장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사 몇 마디 없어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잊히기 일쑤고 순식간에 지나가 얼굴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보일 듯 말듯, 알듯 말듯’ 한 이들은 스크린에서 꼭 필요한 존재다. 주인공들이 화려한 빛을 발산하기까지에는 수많은 단역배우들의 땀과 열정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주 배우는 트릭, 악녀, 레드블라인드, 내부자들, 극비수사, 가시 등 수많은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베테랑이다. 그가 영화를 처음 시작한 계기는 ‘우연’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단역배우를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아 시작한 것이 지금의 배우생활로 이어졌다.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현재 배우의 삶은 운명이라 주 배우는 말한다. 요즘 배우들처럼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배우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들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그는 “영화는 참 신기해요. 영화에서만큼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을 살 수 있잖아요”라며 “남들은 작은 배역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매번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고 체험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역배우로서만 생활을 이어가기에는 금전적으로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단역배우가 한 번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두터운 벽인 오디션 경쟁을 뚫어내야만 하고 그마저도 보수가 넉넉하지 않다. 영화인을 꿈꿨던 많은 배우지망생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다른 길로 가는 것이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런 면에서 주 배우는 행운이라고 말한다.

그는 “영화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스케줄도 일정하지 않고 아직 단역이기 때문에 영화에 필요한 관리는 제 스스로 해야만 하죠”라며 “그러던 중 보조출연 업체에 취직을 하게 됐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게 됐죠. 영화를 곁에 두면서 일을 할 수 있다 건 정말 행운이에요”라고 말했다.

대전지역 보조출연 업체는 하나뿐이다. 영화 제작, 촬영, 배급 등을 위한 기반활동이 대부분 서울에 집중돼 있어 지역에 굳이 많은 거점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대전 한남대에서 영화 ‘1987’이 촬영되는 등 서서히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촬영이 늘어나면서 지역 보조출연자들을 찾는 업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전에는 지역배우들이 영화 출연 한 번을 위해 수 시간을 버스나 기차를 타고가야만 하는 수고를 해야 했지만 이제는 지역에서도 생생한 영화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주 배우는 “대전의 영화관련 인프라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약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최대 영상제작 기반시설인 스튜디오큐브가 대전 엑스포과학공원 내에 조성됐고 옛 충남도청사 등이 드라마와 영화 촬영명소로 각광받으면서 지역 배우들도 활동할 수 있는 터가 마련되고 있다”며 “지역에도 영화배우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에게도 영화촬영의 경험을 제공하면서 함께 꿈을 키워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정재인 기자 jji@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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