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전북 고창군의 30대 초등학교 여교사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직후 학생의 할머니가 직접 키워 가져온 늙은 호박 한 개가 ‘직무 관련성 금품’에 해당될 수 있다고 여겨 손사래를 치며 되돌려 보낸 경험이 있다. 조손 가정이 많은 시골 특성상 손주를 돌보고 가르쳐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농사지은 작물을 가져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더러 있었고, 예전엔 마지못해 받기도 했다.

이 여교사는 그러나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에는 얼굴까지 붉히며 완강하게 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여교사에게 ‘최순실 사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작은 일에서 양심을 지킨 건 잘한 일이라며 안위하면서도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여교사는 특히 “최순실의 딸을 위해 재벌들이 수십억 원을 내놓고, 고위 공직자들이 막무가내로 그 뒤를 봐주는 현실에서 아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까봐 교육자로서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한 통신사(연합뉴스)가 전한 이 기사처럼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이 가져온 충격파는 어마어마했다. 온 국민을 허탈감과 배신감에 빠뜨렸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말 한마디에 수십억, 수백억 원이 오가고, 온갖 부정이 전방위적으로 저질러졌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국민은 패닉에 빠졌다. 국가의 정의가 처참하게 망가진 데 대해 국민은 분노했다.

지금 이 나라는 얼마나 달라졌나. 정부가 공공기관·지방 공공기관·공직 유관단체의 채용 업무를 점검, 엊그제 발표한 결과를 보면, 전체의 약 80%에서 비리가 드러났다. 8%가 아니라 80%다. 총체적 부패다. 청탁받은 지원자에게 유리하도록 추천 배수를 자의적으로 조작해 특정인을 채용했고, 업무 관련 자격증이 없는 직원자녀를 채용했다. 인사위원회에서 특정인의 채용이 부결되자 위원회를 다시 열어 합격시키기도 했다.

공공기관(公共機關)이란 무엇인가. 개인보다는 사회 모든 이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곳이 아닌가. 공공기관은 신의 직장으로 불릴 정도로 대우가 대단하다. 공공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제대로 일한다면 신의 대접을 해줘도 아깝지 않다. 한데 공공기관은 ‘낙하산 인사’에다 국민세금으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곳이 부지기수라는 지탄을 받아온 지 오래다. 공공기관 채용비리의 부작용은 적지 않다. 조직 내 파벌이 생기고, 부조화와 반목의 갈등이 비등한다. 조직의 결속력과 창의력을 기대하기 힘들게 뻔하다. 적지 않은 공공기관이 형편없는 생산성을 보이며 혈세만 낭비하는 이유다. 이런 수준의 공공기관들에게서 전문지식과 문제해결능력, 국민을 위한 ‘상상력’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의 절망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금감원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에 걸쳐 국내 11개 은행에 대한 검사를 벌인 결과, 채용비리 정황이 드러난 사례만 22건이다. 은행 인사담당 임원이 자녀의 면접시험에 면접위원으로 참여해 합격시킨 기막힌 상황 등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금융 검찰’로 불리는 금감원은 믿을 만할까. 금감원에 대한 지난해 9월 감사원 감사에선 52건의 위법·부당 사항이 발견됐다. 감사원은 8명의 직원에게 면직·정직 등 문책 권고를 했고, 이 가운데 5명은 검찰 수사 요청까지 했다. 최고의 지식·지성의 산실인 대학의 부패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교수가 자신의 논문에 중고생 자녀를 공저자로 올린 사례가 최근 29개 대학에서 82건 적발됐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부패해 냄새가 진동하는 대한민국을 어찌할까. 이 나라에 ‘양심의 촛불’은 타고 있나.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가슴을 저미게 하는 참사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인간의 선한 본성’이라고 설명한다. 현대적 정의 개념을 비교적 섬세하게 제시한 롤즈(J. Rawls)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일컫는다. 양심의 촛불을 다시 밝혀 정의를 살려내야 한다. 탐욕에 사로잡혀 있는 상당수 공직자와 고위층, 지식인, 가진 자 들이 먼저 양심의 촛불을 밝혀야 한다. 그럴 때 이 사회에 선한 언행심사(言行心事)의 물결이 출렁이고, 비로소 가슴 아픈 희생자 추모의 촛불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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