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우 공주대교수

 

지난 2014년 4월 16일 08시 50분경 진도군 조도면 인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벌써 4년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우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사건이다. 당시 온 국민이 망연자실하여 심리적 공황상태를 겪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아직까지도 아픈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상태이다. 그 동안 겪었던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없었다. 또 다시 이런 사고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참에 세월호 참사를 한국판 획린으로 인식해 대오각성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밝은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BC 481년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에서 기린이 잡혔다. 태평성대에만 나타난다는 기린이 난세에 잘못 나와 죽음을 당한 것을 보고, 공자가 춘추를 편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춘추는 은공 원년(BC 722)부터 애공 14년(BC 481)까지 12대 242년 동안의 노나라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것인데, 서수획린에서 끝을 맺었다.

공자는 68세(BC 484)에 열국주유를 마치고 노나라로 돌아왔다. 태평성대를 구현하고자 했던 정치적 이상을 포기한 것이다.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공자는 태평성대의 불씨라도 전하기 위해 학문과 교육이라는 우회적인 방법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다. 이때 획린의 현장을 목도하고 크게 낙심한 공자는 기린의 죽음을 끝으로 더 이상의 역사에 대해 기술하지 않았다. 공자가 획린의 시점에서 절필한 것은 때를 만나지 못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획린의 사건을 치세와 난세를 가름하는 하나의 획기적인 계기로 인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획린의 관점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고 당시 이 엄청난 사고의 원인이나 책임을 묻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정부의 잘못을 탓하는 것에서부터 감독관청, 해운회사, 선장, 또는 관련법규까지 안 걸리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는 승객에 이르기까지 온갖 비판과 비난이 폭주했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런 비난들 가운데 어느 것도 틀린 말이 없었다는 점이다. 세월호 사고는 그야말로 복합적인 비정상이나 불합리의 백화점과도 같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불합리의 백화점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 또는 기본을 놓쳤거나 또는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언론에 발표된 선장의 행동에 대해 모르거나 분노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선장 한 사람의 잘못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승객도 배도 안중에 없고 오로지 자신의 목숨만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선장이 되는 사회 그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가 바로 ‘근본 없는 사회’이다. 굳이 획린의 역사의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가 갈 길은 하나다. ‘근본 없는 사회’에서 벗어나 ‘근본 있는 사회’로 가야만 한다.

현 정부에서는 집권초기부터 적폐청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기본이 무너지면 폐단이 발생하고, 폐단이 쌓이면 적폐가 되게 마련이다. 정부가 적폐를 치우겠다고 팔은 걷고 나섰기 때문에 국민들도 ‘기본이 지켜지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혹자는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세월호 참사는 언급하고 제천 참사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세월호 사고는 남의 흠이 되는 것이고, 제천 사고는 내 흠이 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런 것 같다고 짐작하는 것인데, 아마 기우일 것이다. 만약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이는 기본 중의 기본을 망각한 것이며, 그런 것이 쌓이면 ‘적폐’가 되는 것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기본을 탄탄하게 북돋우지 않는다면, 선진사회로 진입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에 일어났던 제천, 밀양 참사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 때 그 아픈 희생의 대가로 얻은 뼈저린 각성을 획린의 역사의식으로 상기해야 한다. ‘기본이 탄탄한 사회’를 지향하는 ‘사회재조’의 길을 뚫어야 한다. 이것만이 행복한 세상을 여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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